교단 약사 ‘여호와의 증인’ 창시자는 미국 피츠버그 태생 잡화상 러셀(Charles Taze Russel, 1852~1916)이다. 러셀은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이 영원한 지옥을 만드셨다는 교리를 이해할 수 없어 고민하다가 스무 살에 그때까지 다니던 장로교회와 회중교회를 떠났다. 그는 회의에 빠져 번민하던 중, 예수 재림에 심취한 재림교도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복음에서 들은대로 예수님은 수난 전날 저녁 제자들과 함께 해방절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과 이별의 만찬이 됐습니다. 해방절은 이스라엘이 그 역사 초기에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사실을 기억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축일입니다.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회상만 하는 것이 아닙
성경은 분명 '행동으로 기울어져 있는' 말씀이다.하느님의 말씀은 네가 듣고서 그대로 하지 않으면실제로 그것을 듣지도 믿지도 않은 것이라고우리에게 말한다(마태 21,28-32; 야고 1,22-25 참조).성령의 힘과 복음의 진리를 직접 몸으로 확인하는유일한 길은 선(線)을 넘는 것이다.결단의 선을 넘어, 위험을 무릅쓰고 그대로 해보고그 결과를 맛보는 것이
삼위일체- 박춘식 하늘을 날아다니는 해맑은 호수 착륙하는 소나기의 싱싱한 난무 하얀 수증기가 구름으로 오르는 깃털 소리 생명 가득, 물 가득, 바람 가득 채우시는 그분은 사랑 안에 사랑 밖에 온 사랑이리니 땅 사람 끌어 올리는 일을, 하늘 아버지 이름으로 죄인을 위한 십자가의 피눈물은, 하늘 아드님 이름으로 새 바람으로 이끄는 혼의 구원은, 하늘 성령님 이
하느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무릎 꿇을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역설이다. 그것을 당신에게 설명할 수 없고, 곧이들리지도 않겠지만, 그러나 진실은 진실이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고,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는 찾는다는 예수의 말씀은, 당신과 내가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목숨을 스스로
우리는 퀘이커와 메노나이트한테서 배울 것이 많다. 그들은 소수파로 살아가는 데 익숙해 있다. 진리를 좇아 살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모여야 할 필요성을 그들은 느끼지 않는다. 작은 그룹으로 모여 소박하게 하느님 말씀을 나눈다. 오늘, 가톨릭교회의 ‘바닥 공동체’에서 이런 운동이 다시 전개되고 있음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전문 신학자를 자
고통스런 일들이 꼬리를 무는 세상에서 자기만의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일은 현실에 대한 착각에 근거하여, 자기를 현장에서 차단하는 장벽을 어느 정도 쌓았을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부정’(否定, denial)이라는 말에 담긴 뜻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항상 말해야 한다. “주 예수여, 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추수감사제 일주일 전이다. 캐롤, 챨리 그리고 바바라는 덜컥거리는 의자에 편안히 기대고 앉아서 감사제 만찬에 필요한 시장거리 목록을 만들고 있었다. 칠면조 25 마리 마카로니 60 파운드 계란 120 타스 햄 50 파운드 우유 50 갈론 그밖에 빵, 샐로리, 상추, 고추, 담배 그리고 할 수 있는것 많은 양의 후식 엄청난 양의
70년대 초, 젊은이들과 함께 일을 시작할 무렵,나는 십대들에게 그들이 괜찮은 사람임을 납득시키려고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그들은 저마다 무턱대고 자기를 미워하는 것 같았다.뒤에 나는 ‘새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일했는데,십대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그렇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들은 끝없이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를 의심한다.자신에 대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 신앙의 역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알아들을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를 요약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세 분인데 한 분이라는 모순된 말을 믿으라는 단어도 아닙니다. 하느님이 비밀리에 알려 주신 신비스런 단어도 아닙니다.하느님이 계시고, 그 하느님을 우리에게 알려준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떠나가시고 신앙인들에
내적 자유는 신이 아닌 것: 이기적이고 부주의하고, 방탕한 것 - 간략히 말해서 죄스러운 모든 것에 우리가 예속되어 있는 것을 정정당당하게 보게 되면서 시작된다. 우리는 하느님의 의지를 식별함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행함으로써 자유를 키운다. 시작 기도 : 오 하느님, 모든 진실과 진정한 자유의 근원으로 가는 저의 여정을 방해하는 방해물과 착각들로부
모든 사회적 일을 그만둔 지 반 년이 다 된다. 물론 시골에서 살아온 15년 동안 그런 시간들을 때때로 가졌었고, 현실적인 요구 때문에 무언가 사회적 일이나 돈벌이를 하러 다닐 때도 그저 ‘면피’ 정도만 했었다. 이제 그나마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잘라 내거나 잘리고, 사람 사이에서도 좀 더 멀어진 그야말로 완전히 ‘자유인
산상설교에서 예수는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가로막는세 가지 기본 장애를 말씀하신다.힘(power), 명성(prestige), 소유(possessions)가 그것이다.그분의 설교에서 열에 아홉은 이 셋 중 어느 하나에 연관되어 있다. 성(sex) 윤리가 내게는 큰 문제인데,예수에게는 문제도 되지 않아 보인다.실제로 그분은 힘, 명성, 소유를 동반자로 삼고 살아가
돌로 된 마음- 박춘식 제 마음 안에 돌멩이들이 가득합니다 미운 사람에게 던지거나 심술궂게 강아지를 혼내주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어느 날 마음이 느닷없이 송곳으로 변하면 사람들의 가슴을 꾹꾹 찌르는 상상도 합니다 마음을 사탄에게 빼앗겨 가족을 외면하고 회개를 미루는 완고한 돌덩이가 되어 하늘을 피해 다니고 있습니다 제 마음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어디 가든 부
오, 지혜여, 거룩하신 하느님의 말씀이여, 오소서.당신은 한없이 강하면서 한없이 여리게 만유를 다스리십니다. 오, 고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님, 오소서.당신은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고시나이 산에서 성스런 법을 내리셨습니다. 오, 이새 혈통의 꽃이여, 오소서.당신은 모든 백성을 위한 증표로 높이 들어 올려지셨고,왕들이 당신 앞에서 침묵하고,나
성 바울로는 말한다.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 3, 28). 우리가 지향하는 새 사람은 무성(無性, neuter)인 사람도 아니고, 단성(單性, unisex)인 사람도 아니고 성욕과잉(oversexed)인 사람도 아니다. 그것
성령 강림 대축일은 예수님이 떠나가신 후,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오늘 우리는 제1독서로 사도행전이 전하는 성령강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을 그대로 녹화하여 알리는 보도가 아닙니다. 초기 신앙인들 안에 일어난 변화를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설명하는 이야기입니다.그 이야기는 구약성서의 표현을 빌려 꾸며졌습니다.
“하늘아, 높은 곳에서 정의를 이슬처럼 내려라.”(이사 45,8)수많은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보고강림절 기간에 자주 읽는 구약 독서의 한 구절이다.은총은, 당신이 관여하고 경영하고 조작함으로써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착각을 멈추고그 착각에 더 이상 사로잡히지 않을 때,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우리는 스스로 경영자(manager)가 되어인
아직까지 나는 가톨릭 신자로서 열 번째 계명에 관한 설교를 들어보지 못했다. 실제로 우리는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설교할 근거가 없다. 서구사회가 바로 이 계명에 대한 거역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자본주의(capitalism)다. 대중매체를 통한 선전광고들은 우리에게 없어도 되는 것들을 꼭 있
“하나의 원이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감싸듯이, 신성도 만물을 그렇게 감싸 안습니다.” 一 Hildegard of Bingen 지난해 말 한국에 소개된 영화 에는 특이한 장면이 나온다. 성당 제대 뒤에 십자고상 대신에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하느님을 그린 ‘만다라’가 걸려 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