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상 유례없이 과정철학(philosophy of progress)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공학 계통 광고문들은 입을 모아 내년에는 더 좋아진다고 선전한다. 그것이 우리 영혼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하여 받아들임(acceptance)의 신비, 성모 마리아의 “그냥 두렴”(Let i
야훼여, 어찌하여 멀리 계십니까? 이토록 곤경에 빠졌는데 모르는 체하십니까? 악한 자들이 으스대며 미약한 자를 박해합니다. 저들이 던진 올가미로 저들을 덮치소서. 악한 욕망 품고도 자랑스레 뽐내고 탐욕으로 악담하며 야훼께조차 코웃음칩니다. 악한 자 우쭐대며 하는 말, "벌은 무슨 벌이냐?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이것이 그의 생각 전부입니
카르멜산 / 박춘식 긴긴 가뭄으로 나무가 흙가루를 먹고 있을 때 그 옛날 이스라엘 서북부 카르멜산 엘리야는 산에 올라 일곱 번 엎드려 빌었다 바다 멀리 손바닥 구름 한 장 떠올라 오더니 비가 쏟아졌다 하늘 축복이 쏟아졌다 천 년 지나 또 천 년 지나 은수자들이 은총 빗줄기 갈망하며 그 산으로 모여들고 영혼을 적셔주는 비구름으로 마리아님을 노래하였다 카르멜
당신은 어떻게 마음의 자유를 지키는가? 스스로 비참해지지 않도록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는가? 당신은 어떻게 악령들에 대처하는가? 3, 4세기 사막의 성인 안토니우스 초상화를 당신도 보았을 것이다. 거기 보면 수많은 악마들이 그에게 덤벼들고 있다. 영적 전투 장면을 보여주는 훌륭한 그림이다. 하지만, 우리를 괴롭히는 진짜 악령들은 아주 미묘하다. 대부분 그리스
영으로 아는 지식은 당신을소비자 중심주의와 정반대 쪽으로 가게 한다.사람을 성스럽게 하는 것은 더하기가 아니라 덜기다.착각을 벗겨 내고 겉치레를 버리고 거짓 자아를 폭로하고머리와 가슴을 비우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완전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예수는 내려가는데 우리는 올라간다.그렇게, 항상 자기를 실현하고 완성하고 성취하려 애쓰는서구 문명의 오만과 거만
복음서를 펼치기 전에 반드시 물어라.예수는 지금 어떤 질문에 대답하고자 하시는가?그런 다음, 내 가슴에 옳은 질문을 안겨달라고주님께 말씀드려라.“저로 하여금 옳은 질문을 하게 하소서.”예수는 옳은 질문을 하는 자들에게 답해 주신다.복음서가 더이상 세상에 답을 주지 않는다면그것은 아마도 세상이 옳은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리라.세상은 묻
지금까지 신약성서를 중심으로, 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여성관, 사도 바오로의 친서를 통한 바오로의 여성관, 그 이후에 쓰여진 신약 서간집에 나타난 여성관을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그동안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며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여성에 대한 시각과 앞으로는 전망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예수 예수는 막힘이 없는 분이셨다. 예수는 사람들 사이에 가로놓
사람들은 자기 자신으로 무엇을 만들라는 게 아니라자기 아닌 다른 것들로 무엇을 창조하고재창조하라는 부름을 받았다.야훼만이 홀로 우리의 바탕이요 지원자요우리를 구원하는 분이시다.한 인간의 삶은 그가 무엇을 얼마나 지녔느냐가 아니라그가 누구냐에 의하여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구약의 중심 주제인 ‘선민’과 ‘아나빔’
주제 : 우리의 영적 여정은 피할 수 없이 잘못된 희망과 착각을 버리도록 배우는 황량하고 정화시키는 자리인 마음의 광야로 우리를 이끈다. 머튼은 우리에게 인내하고 하느님께 겸손하게 의탁하도록 설득시킨다. 시작 기도 : 사랑하는 주님, 사막의 때에 제가 조용히 머물고, 당신께 신뢰를 두며 당신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도록 가르쳐 주소서. 오로지 당신께만 완전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겪은 후, 그분 안에 하느님의 생명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회상하면서 그것을 배워 실천하여, 그들도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이 그런 노력을 하면서 기록으로 남긴 복음서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약 40년 후, 서기 70년경
나는 사랑을 확인하면서 보낸 여름 한 철을 기억한다.당신도 경험이 있으면 알 것이다.사람은 자기가 누군가에게서 사랑받고 있는 줄을 알면,고통과 무거운 짐을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때 인생이 의미 있어지는 것이다.누가 반드시 당신과 한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멀리 있는 누가 당신을 사랑해도 마찬가지다.그의 존재와 사랑을
기도와 노동과 웃음이 있는 공동체, 당신의 낮과 밤을 부드럽게 해줄 음악이 건강하게 양념처럼 끼어있는 공동체를 찾고 있다면, 매사추세츠의 한 시골길 끝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윈첸든 스프링스 : 함께 일하며“ 이 공동체는 가톨릭일꾼 공동체중의 하나로서 개인들이 도전받고, 신앙으로 채워지고 자유롭게 함께 일하며 살고 있는 곳이다.
부활의 신비 1- 박춘식 십자가 밑에는 그분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 그다음 노숙자 하루벌이 지게꾼 노점상 걸인들 서 있고 누워 있고 앉아 있고 고아들은 십자가를 감으며 등나무처럼 올라갑니다 그분은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들이 어머니 자녀들입니다 이어 그분은 십자가를 높이 끌어 올리더니 온몸이 나뭇가지로 여러 갈래 뻗치고 넘치는
가톨릭에서는 성체성사를 할 때마다우리가 이 땅에서 얻는 빵과 포도주를 들고 담대하게 말한다.이것이 하느님이라고!이렇게 하는 다른 종교가 있는지 모르겠다.대부분의 종교들―힌두교, 불교, 여러 종파의 개신교―은사람들을 초월적인 성스러운 생각,관념, 설명, 원리, 전망 등으로 인도하려 한다.그런데 가톨릭의 세계관은 말한다.“역사 안으로 들어가라. 육신
예수는 새로운 정의(justice)를 가르치신다. 하느님의 한결같으신 사랑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그분의 정의다. 예수는 영원한 잔치, 하느님의 사랑으로 베풀어지는 잔치에 사람들을 부르신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먹이시는데, 그분 사랑의 포도주와 음식은 무진장이다. 이사야에게 주신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잔치에 초대받은 것이다. 그
신앙은 선물이다.하느님이 존재하시고, 예수가 주님이시고,그 예수가 성체성사에서 자기를 나타내어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을 당신 스스로 증명할 방법이 없다.그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우리가 그것을 달라고 청했던가?“주님, 당신이 주님이심을 알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우리는 하느님께 받으리라고 기대한 것을 얻는다.예수
사도 바오로 사후에 씌어진 여러 서간에 가훈(家訓, 가정규범)과 교회훈(敎會訓, 교회규범)이 나오곤 한다. 바오로의 가탁서간집(저명인사의 권위를 빌려 그 이름으로 집필한 서간 콜로 3,18-4,1; 에페 5,21-6,9; 1티모 2,8-15; 티도 2,1-10)과 베드로 1서 3장 1-7절에 이러한 가훈 또는 교회훈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서 여성과 관련되는
◆ 주제각 개인의 삶에 있어 본질적 부분인 기도는 내면의 침묵과 훈련뿐만 아니라 올바른 자아에 대한 주의를 요구한다. ◆ 시작 기도나의 하느님,당신은 저에게 기도하려는 욕구를 주셨습니다.저의 존재 깊은 곳에서당신을 어떻게 찾는지 가르쳐 주시며당신께서 저의 삶의 가장 깊숙한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소서. ◆ 머튼에 관하여 세례와 첫 영성체를 할 당시,
이 땅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돈, 섹스, 권력을 빼앗기면당장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모를 것이다.아직 살아있는 목숨으로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그것들을 결정할 방법이 묘연한 것이다.서구에서 영적으로 성숙한 남자들을찾아보기가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대부분 서양 남자들은 안으로부터 사는 법을 잘 모른다.바깥에서 발로 차고 끌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당신 고향 나자렛에서 복음 선포에 실패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그분에 대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목수이며 그분의 가족들도 압니다.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분이 병자에게 하시는 일을 보면서도, 그분을 새롭게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선입견에 머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