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셨듯이, 성모님도 그 생애의 마지막에 하늘로 올림을 받았다는 믿음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승천이라는 표현은 하늘과 땅과 지옥, 세 층으로 된 우주라고 생각하던 시대에 통용되던 용어입니다. 우주 공간까지 탐사하는 오늘의 인류는 우주가 세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성모님이 그
길을 가다가 참 슬퍼보이는 사람의 눈빛에서, 왜소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진 어께에서 나는 가끔 부서진 자 혹은 부서진 것들의 아름다움을 만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감히 신의 아름다움을 본다고 말하고 싶다. 그 아름다움은 나를 정화하고 조금이나마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해 주니까 말이다. 부서진 것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내겐 일종의
세상을 경영하려는 뜻으로 굳어진 마음에굴복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당신은 아는가?그 마음에는 굴복의 지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세계의 모든 큰 종교들이 굴복을 가르친다.그런데도 최소한 제1세계에 사는 우리들은자기 영혼 안에 있는 구멍을 통과하기까지굴복의 필요성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반면에 가난한 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한계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신앙은 하느님의 존재 섭리 능력 교섭을 믿는 것이고 신학은 하느님에 대해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신학이 생각이라면 신앙은 삶입니다. 생각이 삶이 될수도 있고 삶이 생각으로 정리될 수도 있고 생각 따로 삶 따로 일수도 있습니다. "그대가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폴 발레리, 프랑스 시인) 신은 어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치유와 구마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 능력으로 한 동안 치유와 구마를 베풀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던 모양입니다. 사도행전에서도 그렇지요. 예수님은 믿음이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우리에게는 능력이 있습니다. 친절하고 배려할 수 있는 능력,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 도울 수 있는 능력, 노동하
이야기 같은 이야기- 박춘식 사도들이 주님 어머니 부고를 듣고 요한에게 달려왔다 새맑게 누워계시는 어머니 앞에 대성통곡하는 베드로 아늑한 동굴에 어머니 모셨는데 사흘째 되는 밤중 헐레벌떡 나타난 토마스는 두 눈으로 어머니를 봐야만 믿는다는 그 고집 못 꺾고 무덤을 여는 순간 찬란한 빛살이 밤을 밝혔다 아마포에는 색색 장미꽃 가득 장미향 흘러넘쳤다 직감이 하
건강하지 못한 가정에는 서로 속이는 성향이 있다.위기에서 위기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고,그것은 끝없는 근심과 걱정으로 표출된다.나는 여러 번 그것을 내 안에서 발견한다.염려를 바탕에 깔지 않고서는아예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때도 있다.우리들 대부분은 삶의 바닥으로긍정의 정수(精髓)가 흐르게 하는 법을배우지도 장려 받지도 않았다.따라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를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정답을 말하자 든든한 마음으로 칭찬하셨습니다. “너는 반석이다. 너를 반석으로 삼아 내 교회를 세우겠다. 내가 하늘나라의 열쇠를 너에게 주겠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이어 예루살렘에서 당할 고난을 이야기 꺼내자 베드로가 “맙소사, 말도 안돼요!” 저항했습니다.
어째서 많은 나라의 언어들이 ‘술’(liquor)을 설명하면서 ‘영’(spirit)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일까? 다음 번 미사 때 사제인 내가 성배를 높이 들고 “그리스도의 술”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주범들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한 술(알코올)
셋째 마당 ‘속되고 성스러운 교회’ 구상 선생은 우리 교회 안에서 안주하기보다는 교회 현실에 고뇌하면서, 때로는 노여워하면서 살아오신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교회 간의 엄청난 괴리 현상, 질적으로 세속과 다른 대안사회 · 대조사회 · 대척사회가 되기는커녕 자꾸만 세속을 닮아가는 교회, 마태오의 표현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서 공동체가 성찬에 대해 명상하던 내용입니다. 이 복음서는 6장을 시작하면서 먼저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서는 그 이야기를 중심으로 성찬이 지닌 의미를 예수님이 말씀하는 양식으로 설명합니다.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신앙인들에게 남은 것은 그분이 부활하여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신다는 믿음과 그분이 살아
우리신학연구소는 8월 10일 오후 7시 서울 당산동 우리신학연구소 강의실에서 조민아 교수(미국 세인트캐서린대학교 신학과)를 초청해 ‘미셀 드 세르토와 함께 생각하는 평신도 운동’을 주제로 특강을 연다. 미셀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 1925~1986)는 프랑스 예수회 사제로 역사학, 심리학, 철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결합해 연구했다.
예수는 말씀하셨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이어서 어린이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하늘나라를 알아볼 수 없다고 하신다.이 말씀의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우리 모두 부족함이 충분하게 채워지지 않는 가정 환경,어느 정도 어둡고 폭력적이기까지 한가정 환경에서
한 유대인 랍비가 말했다.남에게 기운을 주는 자로 살려면어떻게든지 자기 자신을 하느님으로 알아야 한다고.(여기서 당신은 진실과 환영 사이의 가느다란 선을 본다!)우리는 우리가 누구에게 속한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우리 안에 거하시는 신성을 믿어야 한다.우리는 우리 영혼을 신뢰해야 한다.그 유대인 랍비는 또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했다."내가 기도할 때
너에게 있었던가- 박춘식 사십 년 오십 년 하느님 믿고 믿으면서 어느 하루 쌔가 빠지도록 주님 주님 주님 삼만 번 불러본 일이 너에게 있었던가 하느님께 자신의 온전한 봉헌을 다짐하기 위해 바위 까치 개울물 꽃송이 나무 껴안으며 쌔가 빠지도록 하느님 손길을 잡으려고 애쓴 일이 너에게 있었던가 하느님 말씀 조용히 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쌔가 빠지도록 한 달 내
우리는 은총의 냇물 가까이에 우리 자신을 심고 싶어 한다.그런데 실제로는 죄의 냇물을 멀리 피하는 데인생의 대부분을 소모하고 있다.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을다시 보도록 하는 새로운 상황이 필요하다.내게는 제3세계가 그것이었다.젊은 시절에 몸담은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그것이었고,‘새 예루살렘’이 그것이었다.당신도 그런 상황을 만나야 한다.거
가톨릭일꾼운동의 목적은 예수그리스도의 정의와 사랑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속에 계승된 히브리와 그리스성서에 우리 삶의 원천을 두고 있으며, “거룩함에 있어 뛰어난 남녀성인들,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의 살아있는 증인들”인 모든 성인들로부터 영감을 받고 있다. 이러한 목적은 우리들로 하여금 세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명상 수련을 할 때마다 우리는참여해야 할 현실이 있음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모든 사람이 명상 수련에 참석할 수 있다.물론이다.그런데 명상 수련을 생활 방편으로 삼는 자들이 간혹 보인다.그들이 직장을 가지고 생업에 종사하거나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봉사하는 것 같지는 않다.줄곧 앉아서 자기 배꼽을 응시하는 게 그들의 일과다.하느님을 찾는다는 명분인데,실제로는
일단 당신과 아버지가 하나임을 알면몇 가지 위험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언제 어디서나 완벽한 남자 또는 여자가 되려고,체제를 즐겁게 해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아버지가 당신 이름을 불러주셨기 때문이다.광야에서 예수에게 일어난 일이 그 일 아니었던가?나이 서른에 그는 자기 이름을 들었고,그때부터 위대한 결단과 자기 확신에 찬 삶이 비롯되었다. 당신 안에 있
미국에서는 우물, 대성당, 산책로, 공원 등이 갖추어져 있는유럽의 큰 도시들과 비슷한 도시를 찾아볼 수 없다.그런 유서 깊은 도시들을 만들기에는2백 년 조금 넘은 역사가 너무 짧다.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미국인들에게 그런 도시를 건설할 꿈이 없는 듯하다는 사실이다.미국인들의 꿈은 내 집 마련이다. 미국에서 우리는 거대한 가톨릭 공동체,하느님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