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Were you there when they crucified my Lord?)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Were you there when they crucified my Lord?)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Oh, sometimes it causes me to tremble, tremble, tremble)거
최근 브라질 출신 사회학자 · 철학자 미카엘 뢰비의 저서 를 번역한 김항섭 교수(우리신학연구소 이사장, 한신대 종교문화학과)가 이 책을 중심으로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그리스도교 상황에 관해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발표회는 ‘보수의 신 vs 진보의 신, 신들의 전쟁―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은 끝났는가?’를 주제로 9
[밝아 오는 아침에]하느님이 지으신 것들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사랑이,온갖 피조물에서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과선하심을 알아보는 그의 기쁨이얼마나 컸는지를 묘사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바로 이 기쁨으로 그는 해와 달을 보았고밤하늘 찬란한 별들을 응시하였다.작은 벌레들한테서도 창조주를 보았고그래서 그것들이 밟혀 죽지 않도록안전한 장소로 옮겨 주었다.겨울에는 벌
햇살이 되고 싶은 가을아침에-수추이 가을을 어디에서 맞이할까? 가을이면 기도하고 싶다던 이국땅의 어느 시인은 공원에서 낙엽이 구르는 것을 보고 인생의 이치를 깨닫고 우리 땅의 어느 시인은 호송차에 갇힌 채 노동하는 산야를 바라보며 삶을 묵상하네. 저녁밥 짓는 연기에서 삶의 우묵한 기쁨에 젖고, 낫을 가는 아비의 손끝에서 생의 엄숙함을 배운다네. 산은 산대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번 질문하십니다. 첫 질문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 혹은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대답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사람들이 그분을 예언자라고 생각하였다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너희는 나
[밝아 오는 아침에]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자들의 아버지였다.한번은 그의 제자 하나가구걸하는 가난한 사람에게 말했다.“그대가 가난한 척하는 부자인지 아닌지,그것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이 말에 가난한 사람은 상심하였고프란치스코는 크게 화를 내며 제자를 꾸짖어,그 가난한 사람 앞에서 옷을 벗고발에 입맞추며 용서를 빌라고 명하였다.프란치스코는 자주 말하였다.“누
2001년 9월 11일. 뉴욕주 뉴욕시. 평범하게 보이는 한 부인이 점쟁이처럼 말했다. “날짜는 911 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긴급 상황인, 2001년 9월 11일은 1939년 9월의 어느 날처럼, 평화의 꿈을 깨뜨리고 말았다.그 화요일 아침신문의 주요제목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결코 다시는 예전과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그 세계를
인생을 살면서 혼자 서 있다고 느낄 때, 자주 보지는 못해도 그저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마음을 따스하게 하고,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을 나는 친구라 부른다. 얼마나 좋은 친구를 가졌는가 하는 것은 한 인간의 생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인지, 가끔 이제는 연락이 끊어진 옛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
[밝아오는 아침에] 사도 바오로가 가르친 대로 프란치스코는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다른 이들의 구원에도움이 되리라고 여겨지는 것을 힘써 구하였다.무엇보다도, 혼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갈망하였다.자신의 고요한 마음을 어지럽힐 수 있는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기를 갈망한 것이다.혼자서 하느님과 함께 있기를 방해받지 않으려고세상의 모든 자극에 스스로 귀
야훼여! 도와주소서. 믿음 깊은 자 한 사람도 없사옵니다. 믿을 만한 사람 하나 없사옵니다. 입만 열면 남 속이는 말이요, 입술을 재게 놀려 간사한 말을 하고 속 다르고 겉 다른 엉큼한 생각뿐입니다. 야훼여! 간사한 모든 입술 막아주시고 제 자랑하는 모든 혀를 끊어주소서. 저들은 말합니다. "혀는 우리의 자랑, 제 혀로 말하는데 누가 막으랴?" "없어
발이 없다- 박춘식발이 없다 양탄자로 떠다닌다선녀처럼 사람들 위로 날아다닌다발이 없으니 얼마나 편한가발이 없으니 얼마나 불쌍한가발걸음의 피곤함을 모른다동동거리는 자갈길의 불평을 들을 수 없고땅바닥의 쓰린 슬픔도 물론 모른다계급의식 공주병 독선 자기도취역겨운 권위와 수직선의 높은 의자 그리고밑에서 위를 쳐다보는 일이 없으므로나뭇잎들은 앞뒤 똑같이 반짝이는 줄
[밝아 오는 아침에] 어느 날 프란치스코 일행이 골짜기를 지나는데거기 온갖 새들이 모여 있었다.그들을 본 프란치스코는 일행을 떠나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새들에게로 달려갔다.새들은 평상시처럼 날갯짓을 하는 대신조용히 나뭇가지에 앉아 그의 말을 들었다.“동무들아, 너희는 마땅히너희를 지으신 창조주를 사랑하고 찬미해야 한다.그분은 너희에게 깃털로 옷을 입히시고날개
[밝아오는 아침에] 만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마을에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평화를 설교하고, 구원을 가르치고 죄 용서받기 위한 회개를 어울러 권하였다. 그는 이 모든 일을 인간의 이성(理性)에 호소하는 웅변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하였다. 담대하게 설교하되, 듣기 좋은 말로 아첨하거나 그럴싸한 약속을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죄를 가볍게
[밝아오는 아침에] 어느 날 저녁 무렵, 프란치스코와 그 일행은 먼 길에 굶주리고 지쳐서 어느 황량한 곳에 이르렀는데, 사람들 사는 마을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라 먹을 것을 구할 방도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웬 사람이 나타나서는 약간의 빵을 건네주고 문득 사라져갔다. 그들의 놀라움은 곧장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로 바뀌었다.그 일이 있은 뒤로 보름 동
[밝아오는 아침에] 남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프란치스코는 하찮게 여겼다. 그의 야망은 훨씬 더 높은 데 있었다. 가난한 사람 되기를 온 몸으로 갈망한 것이다. 세상은 가난을 피하고 싫어했지만 그는 알았다, 하느님 아드님이 그것을 보물로 여기셨음을. 가난은 그의 배필이 되었고 평생 연인이 되었다.그는 가난의 아름다움을 사랑했고 그녀를 더욱 가까이 붙잡고자
교회 안과 밖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 마음 아프고 속상할 뿐입니다. 모두들 다른 입장을 갖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는 점점 힘들어집니다. 도대체 현실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명쾌한 답변을 찾아줄 신학자 어디 없을까요? 사실, 이 질문은 참으로 곤란한 질문입니다. 신학은 원래 모호성을 그 본질로 삼는 학문이기 때문이지요. 하느님의
눈빛 만으로-수추눈빛만으로 알 수 있었죠그 착한 눈매가 서글퍼그를 미워할 수도 없는그에게 달겨들 수도 없는그래서 나를 무장해제시키는그저 바라보고만 있지만겉사람뿐 아니라 내 속사람까지모두 읽고 계시는 그 눈빛만으로나를 온전히 정복하신 당신당신은 내 두려움을 아시고내 약함을 드러내시면서도보잘것 없는 내 안에서환히 빛나는당신의 모습을 또한 찾아주시는 분 오래 전
[밝아오는 아침에]어느 날 미사 도중에 복음서가 특별한 방식으로 프란치스코에게 말했다.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금이나 은이나 돈을 가지면 안 된다는 복음서의 말이 들렸던 것이다.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길을 가면서 보따리도 전대도 빵도 지팡이도 가져서는 안 된다.신발도 여벌옷도 가져서는 안 된다.그들은 오직 하느님의 나라와 참회를 설교해야 한다.그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밝아오는 아침에]하느님 은총 앞에 무릎을 꿇기 전, 세상에 푹 빠져 지낼 때 프란치스코는흉한 나환자들을 멀리서 보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코를 움켜쥐고 등을 돌렸다.그러던 어느 날, 나병 환자 하나를 만났는데 갑작스런 연민에 휩싸여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그 일이 있은 뒤로 프란치스코는, 그를 구원하신 분의 자비로 말미암아자신에 대한 혐오를 극복할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청각 장애인 한 사람을 고친 이야기였습니다. 귀도 먹고 말도 더듬는 사람 하나를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두 귀에 당신 손가락을 넣었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쉰 다음 "에파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시대 청각 장애인을 치유할 때, 사람들이 흔히 하던 동작입니다. 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