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향해산을 오른다.산의 품에 안겨서.산을 등지고산을 내려간다.산의 품에 안겨서. 관옥 이현주목사, 동화 작가, 번역가. 동서양을 아우르는 글들을 집필하고 강의도 하고 있다. 등의 동화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오늘 복음에서 예수의 이 말씀을 듣고,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서로 사랑하고 있을까?’ 그래서 한 단어 한 단어, 한 구절 한 구절씩 천천히 곱씹어 보았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 ‘한 것처럼&hellip
저 작은 새의이름은 모르지만전생(前生)이 어떠했을지는짐작이 간다.스님!스님!나뭇가지 사이로기웃거리며안타까이 스님을부르고 있는. 관옥 이현주목사, 동화 작가, 번역가. 동서양을 아우르는 글들을 집필하고 강의도 하고 있다. 등의 동화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누군가는 이야기했다.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전율이 아마도 섬세한 시인에게는 잔인할 만큼의 아픔으로 다가온 걸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의 노래는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하는 노래인데, 목련꽃이 핀 세상은 정말 아련한 그리움과 새 생명의 신비를 떠오르게 한다. 이런 때 우리는 부활 시기를
요한 복음서가 복음서들 중 가장 늦게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이미 기록된 다른 복음서들 안에 있는 주제들을 정리하여 명상하는 식으로 엮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위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명상하는 것입니다.그 시대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들은 예수님의 최후 만찬에서 비롯된 성찬을 이미 거행하고 있었습
골짜기에 앉아 있는데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간다.눈을 들어 보았지만비행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나는 지금 그래서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은 알지만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이것이 나의 ‘앎’이다.지금이라도 골짜기를 벗어나산마루에 올라서면비행기가 어디로 날아가는지알 수 있겠지만나는 새가 아니므로비행기가 사라지기 전에산마루로 올라갈 수는 없다.그러므로 나는알면서 모르는
우리신학연구소(소장 경동현, 이하 연구소)가 26일 오후 7시 서울 당산동 연구소 강의실에서 ‘교황 프란치스코, 바티칸에 봄은 오는가?’를 주제로 월례발표회를 연다. 이번 발표회에서는 황경훈 연구소 부설 아시아신학연대센터장이 이전 교황들에 대한 평가와 함께 교회의 과제에 대해 발표하고, 김항섭 연구소 이사장이 라틴아메리카에서의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 시
누구의 기도일까- 박춘식오늘 큰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지나가는 자동차가 나를 들이박지 않는 것은누군가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다뜻하지 않게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은그리고 나 같은 큰 죄인도 아직 건강한 걸 보면누군가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다콩알 신앙 안에서도 하느님을 느끼고화장실 네모 타일 벽에서 십자가를 생각한다누군가나를 위하여 밤
역겨운 제 모습을 자꾸만 드러내는자신이 지겨웠습니다.자신을 역겹게 보고 있는 자신이또 지겨웠습니다.역겨운 자신을 드러내는지겨운 자신을 보고 있는역겨운 자신에서 지겨운 자신으로이어지는 수레바퀴!아아,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어쩌면 좋단 말인가?하는 수 없이 저물어가는 길로지팡이 짚고 나섰습니다.다리가 아프고 등줄기에 땀이 배도록걷고 또 걸었습니다.뻣뻣해
우체국에 다녀왔습니다.가로수들도 그대로 있고우체국도 그대로 있는데내 마음만 오늘은세상에 대하여그대를 향하여조금 슬펐습니다.그래도, 슬픔 또한 아름다운사람의 감정이기에가슴에 가만 안고서우체국을 다녀왔습니다.차들이 앞뒤로 달렸지만부딪치지 않고 잘 다녀왔습니다.나는 이 슬픔 또한아무데도 부딪치지 않고제 길들 곱게 가리라 믿습니다.라디오에서도, 보십시오비발디의 사
내 눈이 서쪽 가지에머물러 있으면동쪽 가지는 내 눈에보이지 않는다.옹근 나무를 보려면, 다른 길이 없다.나무를 보지 말아야 한다.보면 보이지 않고보지 않으면 보이는 세상에서. 관옥 이현주목사, 동화 작가, 번역가. 동서양을 아우르는 글들을 집필하고 강의도 하고 있다. 등의 동화와
오늘은 부활 제4주일입니다. 또한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번 주일을 ‘착한 목자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양떼를 돌보시는 착한 목자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이에 더하여 교회는 매년 부활 제4주일을 ‘성소 주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예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목자이신 것처럼 우리 가정에서, 주님의 목장에서 당신의 양
며칠 전, 시아버님께서 홀로 사시는 완도에 내려가는 길에 완도수목원에 들렀다. 입구부터 만개한 벚꽃과 자홍색 꽃 잔디가 화사한 봄기운을 전해 주었다. 그중에서도 국내 유일의 난대 수목원이라는 이곳의 주인공은 역시 동백이었다. 노란 수술을 품고 새빨간 꽃망울을 터트린 동백꽃이 수목원 전체를 붉게 물들여 그야말로 꽃 천지였다.애욕을 넘어 천국으로 김소월은 어느
세상에 어두운 밤이 있는까닭은온갖 살아있는 것들이저마다 등을 지니고 있거니와등마루도 앞가슴만큼은햇볕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그래서,해가 저들의 등을 비추는밤이 있는 것이다.세상에 밤이 있는 까닭은해한테 밤이 없기 때문이다. 관옥 이현주목사, 동화 작가, 번역가. 동서양을 아우르는 글들을 집필하고 강의도 하고 있다. 등의 동
수도생활, 축성인가 봉헌인가?그게 그거 아냐?명민한 독자들은 이 제목이 잘못된, 적어도 부적절한 개념설정에 기초함을 즉시 알아차리고 의아해 할 법하다. “서원을 통하여 … 세 가지 복음적 권고의 의무를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참조: 교회헌장 44; 교회법 573조 ①)의 삶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 수도생활? 봉헌생활? 축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믿음이 발생하면서 초기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목자(牧者)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목자는 하느님이었습니다. 구약성서의 시편 23장을 노래한 ‘주님은 나의 목자’라는 성가가 있습니다.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예수님
잠에서 깨어나는 대로커어튼을 열면눈에 들어오는 앞산이름을 나는 아직 모른다.푸른 새벽별 머리에 얹고검은 그림자로 엉거주춤서 있는 건지 앉아 있는 건지아무튼 어김없이 거기 있는 앞산을오늘부터 나 혼자서지리산(智異山)이라 부르기로 했다.왜냐하면지리산이 여기보다남쪽에 있고저 앞산 또한남쪽에 있기 때문이다.방향이 같으면 같은 것이다.크든 작든,뾰죽하든 뭉툭하든,많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요한 21,1-19) 그날, 혹시나!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했지만, 역시나! 빈 배로 돌아온 아침. 내일을 기약하며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따라오라 하시기에 즉시, 정말로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나섰습니다.함께 살아온 날들 안에서, 우리의 스승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아담을 지으시면서- 박춘식이것저것 손 보시고빠진 것이 없나 살피는데두 팔을 벌려눕혀보니십자(十字) 모양이다물고기처럼 다리가 하나만 있으면멋있는 모양이 되겠구나아니다 밭일을 하거나힘껏 달려갈 때에그래도 송아지 정도는 잡을 수 있어야지두 팔을 두루미 날개처럼 만들까사람이 날아다닌다면 — 글쎄골똘한 생각에 잠기시는하느님사람은 마음으로 날아다니게 만들어
새벽 두 시에 잠깨어아내의 아픈 다리 조금 주물러주고서재에 불 밝혀성류하(成流下)의 시(詩)를읽고 나서불빛에 떠다니는 티끌을 본다.은빛 새처럼 날아다니는 티끌을 본다.얼마나 깨끗한 티끌인가?마침졸음이 다시 찾아왔으니옷 벗을 것도 없이아내의 체온 곁에 돌아가 누워야겠다.누워서은빛 새처럼가벼이 날으는 세상의 티끌이 돼야겠다.생각하고, 다시 보니불빛에 떠다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