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낸 문제는 잘 찍으셨나요? 사실 단답형으로 내도 대부분 잘 맞추셨을 문제였습니다. 답은 아시다시피 일요일입니다. 부활은 복음을 통해 보면(마태 28,1; 마르 16,9; 루카 24,1; 요한 20,1) “주간의 첫 날”에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즘이야 주간의 첫 날은 월요병을 유발하는 월요일이라 하겠지만, 당시 유다 사회에서 안식일은
내가 사는 지역은 여름에도 시원하기로 유명하다. 마크 트웨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여름을 보내고, 내 생애 가장 서늘한 여름을 보냈다고 할 정도니까.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좀 다르다. 갑자기 6월에 비가 내리는 이변을 보이기도 하고, 7월부터 무척 덥다. 물론 한국의 땡볕 더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이곳은 에어컨 같은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리고
“복되어라, 부드러운 사람들! 그들은 땅을 상속 받으리니.” (마태 5,5)‘겸손, 부드러움, 온유함’ 등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프라에이스(praeis)의 적절한 번역 문제로 까다로운 구절이다. 오늘의 구절은 시편 37,11을 인용하였는데, 히브리어 아나빔(anawim)은 공동성서 그리스어 번역본(70인역)에서 프라에이스로 옮겨졌다. 우리말 공동번역 신약성서
산길을 내려오다가온몸에 소름이 돋으며발길이 절로 멎었다.저만큼 대가리를 곧추 세운커다란 뱀이나를 노려보고 있었다.그러나 그것은뱀이 아니라시커멓게 썩어가는소나무 등걸!웃음이 나면서소름도 가라앉고발걸음도 풀렸다.순간의 착각이 낳은공포의 순간이었다.그렇구나, 세상의공포란 게 그런 것이구나.착각이 그런 것이로구나. 관옥 이현주목사, 동화 작가, 번역가. 동서양을
“복되어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니.” (마태 5,4)달이 해를 품듯이 산상수훈은 주의 기도를 향하고 있다. 또한 산상수훈은 공동성서에서 힘을 얻고 있다. 공동성서에서 출발하여 주의 기도로 향하는 산상수훈의 두 흐름을 주목해야 하겠다.축복의 말은 공동성서 지혜서에 나타난다. 지혜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복되다고 찬양한다(집회 25,7-1
봄이 왔는데도한사코 매달려 있는도토리나무 마른 잎사귀들.저것들이 언제 지려나늘 궁금했는데오늘, 바람 부는 뜰에앉아 있자니가을 은행잎 지듯우수수 소리를 내며연분홍 진달래꽃 위로쏟아져 내린다.그렇구나, 낙엽도나무마다지는 때가 있구나!사람도 사람마다다르긴 하겠지만사람 될 때 언제고있지 않겠는가? 관옥 이현주목사, 동화 작가, 번역가. 동서양을 아우르는 글들을 집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위원장 조해붕 신부)가 주최하는 첫 번째 ‘가톨릭 에코 북 콘서트’가 6월 28일 오후 7시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산 다미아노 카페에서 열렸다.생태를 주제로 한 책을 통해 생태파괴적 문화에 맞서는 대안을 모색하고자 마련된 이번 에코 북 콘서트에서는 (브라이언 토머스 스윔 · 메리 에블린 터커 공저)에 대해 이
계시는 역사 안에 주어졌다. 따라서 사실적(事實的)이며, 역사적 농도를 지녔다. 계시는 역사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놀이에서 확인된다는 말이다. 계시라는 말이 나타나기 전에 놀이가 먼저 발생하였다. 놀이가 있었고, 그것이 언어로 정착하였다.사적(私的) 계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점은 인간 삶의 현장을 벗어나, 영지적(靈知的) 성격의 계시를 말한다는 것
“복되어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마태 5,3)예수 말씀이 장엄하게 소개된다. 예수의 가르침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오늘 시작되는 산 위의 말씀(산상수훈)은 신약성서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절 아닐까. 원래 그리스 신들에게 주어진 단어 makarios는 후대에 쓰인 eudaimon과 뜻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 가난한 사람에게 구원
삼총사- 박춘식꺼지지 않는 불빛이 되기 위해세 학생은 먼 길을 기도로 걷고 걸었다함께 하늘의 불씨를 받아 가꾸는데최방제 신학도는 작은 불꽃으로 먼저훌쩍 하늘나라로 올라갔다하느님께 엎디어 빌고 빌어 바다의 파도가 되더니한반도를 푸르게 감싸 안고 있다 얼마 후큰 횃불을 들고 돌아온 사제 김대건가는 곳마다 하늘의 불을 지피다가 결국반도 한가운데서 붉은 제물로 하
꽃이 활짝 핀 앵두나무에벌들이 모여들어분주하게 꿀을 따고 있었다.벌들만 모인 게 아니었다.나비도 세 마리나 있었다.그런데서로 부딪치거나눈을 부라리거나금을 긋는 일 따위는 볼 수 없었다.벌과 나비와앵두나무가유엔도, 평화유지군도 없이서로 제 일만 하는데도거기 놀라운 평화가앵두나무 꽃보다 밝게 피어 있었다. 관옥 이현주목사, 동화 작가, 번역가. 동서양을 아우르
오늘 복음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오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리자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기댈 곳조차 없다”
지난 글에서 고대 근동 문명을 만든, 진흙 관련 3대 직업을 보았다. 이 글에서 다루는 서기관은 벽돌공과 옹기장이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글을 다루었다. 이들은 거의 모든 고대 근동 문헌을 작성했다. 우리에게 전해진 고대 근동의 신화, 전례, 지혜, 시, 탄원, 찬미, 호소, 회계, 칙령, 연대기, 외교문서, 각종 목록, 수학, 과학, 마술문 등은 모두 이들의
그리고 그분은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백성 가운데서 온갖 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쳐주셨다.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지자 갖가지 병과 고통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곧 귀신들린 사람들과 몽유병자들과 중풍병자들을 모두 그분께 데려왔다. 그분은 그들을 고쳐주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와 데카폴리스와 예루살렘
인생에 대하여특히, 고달픈 인생에 대하여의문이 있거든산에 들어가 물어보아라.인진왜란병자호란육이오 동란까지온갖 난리 다 겪고도 의연(毅然)히살아남아뭇 중생(衆生) 품어주는 산한테물어보아라.근사한 대답을 얻을 것이다. 관옥 이현주목사, 동화 작가, 번역가. 동서양을 아우르는 글들을 집필하고 강의도 하고 있다. 등의 동화와
종교들과 교회들은 구원이 아니라 구원의 성사(聖事)이다. 하느님은 역사 안에서 사람들을 통해 당신 피조물의 구원을 이루신다. 교회들이 분열되고,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 선임된 사람들이 성직자 혹은 사도들의 후계자 등을 구실로, 은폐된 정치 행위들, 곧 부(富)의 축적, 음모, 각종 횡포와 권위의 남용, 민폐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주어진 구원의 기
어찌저찌 주일 미사에 불참한 경우 주님의 기도 서른세 번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요?이런 질문을 해 오시는 분들은 그래도 주일 미사 참례가 신자들의 삶에 매우 핵심적인 행위란 것을 아시거나 그 중요성의 낌새를 느끼고 계신 분들이라 하겠습니다. 세례는 받았지만 신앙 활동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분들은 이런 것에도 무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지함은 그 자체로
그런데 갈릴래아 호숫가를 거닐다가 보시니,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기 안드레아 두 형제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은 어부였다. 그러자 그들에게 “내 뒤로 오시오. 당신들을 사람 낚는 어부들로 삼겠소” 하셨다. 그러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다. 그리고 그분은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기
보겠다는 마음을 먹으면거죽이 보이고그 마음을 비우면독이 보인다.*그러나, 거죽을 보지 않고서속으로 들어갈 눈이 없으니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가그 마음을 비우는그것이 바른 순서렷다.보겠다는 마음만 가지고는끝내 안 보이고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는더욱 안 보이는그게 바로……다음은 말을 할 수가 없다.* 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분은 갈릴래아로 피신하셨다. 그러나 나자라(나자렛?)을 버리고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에 있는 호숫가 가파르나움으로 이사하셨다. 그리하여 이사야 예언자를 시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즈불룬과 납달리 땅, 호수로 가는 길, 요르단 강 건너편 이방인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