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의 가장 슬픈 역사는 분단의 역사입니다. 분단의 역사를 상징하는 숱한 사건 중의 하나가 42년 전의 인혁당 사건입니다. 우리는 그 이후 마흔두 번째 봄을 맞았지만, 대선 후보 그 누구도 인혁당 문제를 언급하는 후보가 없습니다.분단의 역사가 반민특위를 무산시켰고, 제주 4.3항쟁과 한국전쟁을 낳았습니다. 분단의 역사가 숱한 양민학살을 낳았습니다.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의 갈개댁 할매는 당산나무 뒤에 집이 있습니다. 다섯 남매를 잘 키워 모두 도회지에서 밥 먹고 살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어느 자식이든 한 명이라도 찾아오니 남 부럽지 않은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그런데, 날벼락을 맞았다고 하십니다. 사든가 뭔가가 들어온다고 동네가 난리가 난 것이지요. 몇 년 전에 당산나무 큰 가지 하나가 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최근 고리 핵발전소 3호기 격납건물 내벽에 설치된 두께 6밀리미터 철판 6064곳을 점검한 결과 총 127곳에서 두께가 줄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원자력안전위는 전체 격납건물을 30센티미터 간격으로 잘게 쪼개 점검했으며, 현재까지 검사가 이뤄진 곳은 전체 면적의 54퍼센트라고 밝혔습니다.이번 조사는 영광에 있는 한빛 핵발전소 2호기에 대해 정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1073일 만에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대통령 박근혜 파면 13일 만에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우리 모두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평화를 빕니다. 장영식(라파엘로)사진작가
사순절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세력에 의해 쓰러지고 짓밟히고 온갖 모욕을 다 당하고 끝내는 옷을 벗기고 매를 맞고 창에 찔리며 십자가 위에서 몸의 수분이 다 말라비틀어지는 비참한 죽임을 당하는 사순절입니다. 정의가 죽임당하고 희망이 죽임당하고 기쁨과 환희가 죽임당하는 슬픈 사순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걷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맞잡습니다. 좁
10년 전 3월 6일 아침, 아버지는 유미를 택시에 태우고 수원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유미는 택시 안에서 "아이 더워, 아이 추워"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창백했던 유미는 택시 안에서 숨을 거뒀습니다.유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입 대신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취업을 선택합니다. 기흥에 있는 삼성반도체였습니다. 대기업에 취업했다고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1년 8개월이 지나고 2005년 6월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유미는 기흥공장에서 반도체를 화학약품에 담그고 빼는 작업을 반복해서 일했던
대한민국 외교부가 부산 일본영사관 앞의 소녀상과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이전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2월 14일 외교부가 부산 동구청에 보낸 공문에 의하면 “작년 말 일본영사관 후문 옆에 설치된 소녀상의 위치가 외교공관의 보호와 관련된 국제예양 및 관행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소녀상의 이전을 명시하고 있다. 동시에
인류의 모든 생명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알리고, 탈핵의 희망을 담아 기도하며 전국을 도보로 순례했던 탈핵희망 국토도보순례단이 광화문에 도착했습니다. 순례단은 지난 1월 10일 전남 영광핵발전소 앞에서 출발하여 2월 18일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는 총 31구간 588.6킬로미터를 걸었습니다. 2013년 6월 고리 핵발전소 앞에서부터 시작했던 순
부산지하철 노동자 중에는 세 번의 해고 통지서를 받은 노동자가 있습니다. 이제 그는 고도리에 선 그 끗발의 정상, 현실에서는 결코 맞이해서는 안 될 3(해解)go를 불렀습니다. 한 사람의 노동자가 한 직장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당한 것입니다. 이영호 씨(59)는 1985년 부산지하철에 1기로 입사해서 거듭되는 투쟁과 해고 속에 살아온 노동자입니다.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가 일본영사관 앞의 소녀상을 찾았습니다. 시력이 좋지 않은 듯 할아버지는 까만 안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소녀상을 바라보며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942년, 누나는 열일곱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탔습니다. 배를 타지 않으면 죽는다는 협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소녀들은 식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배를 탔다고 합니
2017년 연초부터 부산지하철 노사분규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부산교통공사의 ‘재창조 프로젝트’ 때문입니다. ‘재창조 프로젝트’란 외주와 계약직 그리고 민영화를 통해 앞으로 10년간 1000명의 인력을 줄이겠다는 구조조정안입니다. 그와 동시에 부산교통공사는 노조가 작년 성과연봉제와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파업을 한 것을 문제 삼아 노조 간부 40명을 직위해제
지난 2015년에 합의된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문‘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논란의 핵심은 위안부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그 내용을 알리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동의도 받지 않은 일방적 합의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소녀상 철거가 합의의 전제 조건이라는 의구심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이렇게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12.28 한일
박종철 열사 30주기를 맞았습니다. 20대 청년이었던 열사가 경찰의 잔혹한 물고문에 죽게 되고, 세상은 그 죽음 위로 민주화의 거센 폭풍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죽은 뒤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집도 차도 빵도 더 많이 소유했지만,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권력은 교활하고
세월호 1000일이 지났습니다. 차가운 바다 속 깊은 곳에서 엄마와 아빠를 찾던 아이들이 되살아옵니다. 세월호 희생자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합니다. 예은이는 제 심장 안에 있습니다. 숨 쉴 때마다 예은이가 뛰고 있어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심장 안에 있는 아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저 혹독한 탄압과 무관심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매주 수요일 열리는 ‘수요시위’가 25주년을 맞았습니다. 2017년 1월 4일은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께서 일본군 성노예 범죄를 용기 있게 고발한 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일본 총리의 방한에 맞춰 시작된 수요시위가 올해로 25주년을 맞게 된 것입니다. 처음 수요시위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긴 시간
2016년 12월 28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염원과 시민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일본과 밀실에서 매국적 위안부 합의를 강행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이날 부산 시민들은 동구청에서 ‘소녀상 건립 막는 일본 앞잡이 동구청장 규탄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시민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초량 정발장군 동상 앞에서 제1263차 수요시위를
논란이 많았던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가 12월 20일부터 상업발전을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25기의 핵발전소가 상업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는 초고압 송전선로인 밀양 765kV송전탑으로 연결되는 핵발전소입니다. 10년 넘게 송전탑 갈등의 뿌리였던 핵발전소입니다. ‘밀양할매’로 상징되는 눈물과 한숨의 뿌리인 핵발전소입니다. 저
영화 '판도라'가 화제입니다. 지진으로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나는 재난을 그린 영화입니다. 가장 극적인 것은 그 재난을 막아 내기 위해 비장한 모습으로 핵반응로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전문가’ 집단은 정보를 차단하고 왜곡하고 조작하기에 급급합니다. 비록 영화 속 이야기지만,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희생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이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고 있는 순간에도 청와대는 깊은 침묵 속에 있었다. 대통령은 출근도 하지 않았고, 그의 행방은 깜깜했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침몰하는 여객선 안에 갇혀 있었음에도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 시간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 시간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 시간
안녕하십니까? 저는 부산 엄궁초등학교 5학년 김xx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박근혜와 최순실 등 아무 생각이 없는 인간들 때문에 나라가 망해 가는 꼴을 보기 싫어서 나왔습니다. 저는 쓰레기보다 못한 박근혜를 보면서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12년 동안 이명박보다 더한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박근혜는 장장 세월호 7시간 동안 주사만 맞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