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피아 성당이 있는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여행이란 좀더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을 보면서, 전혀 다른 풍광에 놀라고 부러운 시선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 도시를 떠나 인구 10만명에 그리스도인은 고작해야 50여 명 남짓 남아있다는 안티오키아를 찾아 비행기에 올랐다.안티오키아는 33년경 예루살렘
이라는 책은 한홍구 교수와 재일역사학자 서경식 씨, 다카하시 데쓰야라는 일본인이 함께 쓴 대담집이다.두 주 전 평화박물관에서 저자들의 대담이 열렸다.후쿠시마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성찰하고 모색하는 자리였다한홍구 교수는 요즘 유행하는 힐링에 대하여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난 후에야 힐링을 말해야 한다
하삼두 (스테파노)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동아대학교,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현재 밀양의 산골에 살며 문인화와 전례미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동안 성당과 수도원, 기타 교회관련시설에서 미술작업을 했다. 등 명상그림집을 펴냈다.
어느 날 두어 명의 낯선 사람들이 공자를 찾아왔다. 공자와 그 일행이 노나라를 떠나 이방을 전전하고 있던 때였다. 아마도 위나라에 머무르고 있었거나 그 나라를 지나고 있었던 것 같다. 공자의 숙소를 직접 찾아온 그들. 중심인물로 보이는 사람은 의봉인(儀封人)이라고 스스로를 밝혔다. 의(儀)는 위나라의 변방에 있던 한 지역이고 봉인(封人)은 변방의 수비를 맡
아씨시의 프란치스코가 만난 하느님은 가난했다. 어느날 프란치스코는 맨돌로 쌓아올린 조그맣고 가난한 성당의 고요한 적막 가운데 서 있었다. 다미아노 성당, 그 성당에 걸린 십자가 위에서 “프란치스코야, 내 집 좀 고쳐다오. 너도 보듯이 다 망가졌단다”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분은 너무나 가난해서 프란치스코에게 도움을 청했다.그분은 바로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
대추야자나무 우거진 숲길에서 당나귀를 몰고 오던 베르베르인 소년 ‘카미스’는 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독학으로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상당히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때문에 시와를 방문한 외국인 여행자들은 대부분 카미스의 안내를 받으며 인근의 유적지를 둘러본다고 했다.일전에 북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향할 때 국경지대의 번거로운 검문검색을
어김없이 4월 3일은 온다. 바람의 신이라는 영등할망이 봄을 제주로 불러오는 4월이 되면 제주민들은 슬프다.이라는 제주 출신 감독이 만든 4.3 항쟁을 흑백화면에 담은 영화가 개봉했다. 지난해에 완성된 이 독립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넷팻상을 비롯 네 개의 상을 수상했다. 올해 벽두부터 이 영화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전세계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인지도 모른다.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살아온 자들처럼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만 중요해지고, 방송 프로그램은 오직 시청률 1위만을 향해 달려가는 풍토 말이다.‘백년’ 동안 훈습된 ‘유산’은 어쩌면 그런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듯이 구성된 드라마가 있다. MBC 주말극 은 퍼즐 같은 혹은 패치워크 같은 드라마다. 등장하는
3월 하늘을 가만히 우러러보면 나는 김순덕 할머니가 생각난다. 김순덕 할머니는 1921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가난한 농가의 2남3녀 중 둘째 딸로 출생했다. 그녀는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일본 공장에서 일할 여공을 모집한다는 말에 속아 일본 나가사키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되었다. 그 후 중국 상해에서 남경에 이르기까지 부대를 따라 이동하며 위안부 생활
“마야인들이 예측했던 2012년 종말이 오지 않았으니, 애석하게도 여러분은 다음 학기부터 제 수업을 듣게 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도서 목록을 첨부합니다.”새해 첫날 교수님의 메일을 받고 나도 모르게 혼자 웃음이 터진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이 되었다. 항상 나보다 한 발 앞서 흘러가버린 시간을 쫓기에 바빠 주위 사람들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최영선 수사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인터넷방송 ikolbe 책임자)
한 때 '집'만 그린 적이 있었다.고즈넉하면서도 낡고 허름한 집..집 한 채를 화면 가득 채워 그렸었다.집이 있는데도 집을 그리워했고 사는 게 사막을 걷는 것처럼 느껴졌었다.나는 나 자신으로부터의 이방인 같았고, 나로 돌아가기만을 꿈꿨다.1970년대 말, 언니 오빠가 자취하던 아현동 언덕배기 집갓 대학에 입학한 언니는 기타 학원에 다니며 기타를 배웠다.
'여성노동자의 어머니' 이영숙 소피아 수녀(툿징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78세)의 장례미사가 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녀원 성당에서 3월 23일 봉헌됐다.김병상 몬시뇰(인천교구)이 주례한 이날 미사는 박기호, 하유설, 오기백, 전종훈 신부 등 9명의 사제가 공동집전했으며, 이영숙 수녀가 1970-80년대에 함께 일했던 노동사목 활동가들과 성남 만남의 집 관계자
어떤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은 ‘어떻게 땅을 사고판단 말인가’라며 탄식을 했다지만, 시골에 살아보니 적어도 먹을거리를 자급할 정도의 땅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 땅이 아니고는 내 방식대로 농사를 마음 놓고 지을 수도 없고, 내 방식대로 짓는 농사로 일 년 임대료를 감당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우리도 지난해 문중 소유 밭을 700여
영화가 아무리 상상의 산물이라지만 냉혹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보여줄 때 현실보다 더욱 강하게 다가오는 현실감은 소름을 돋게 한다. 많은 SF영화들이 표면적으로는 가상의 세계를 그리는 듯하지만 한 껍질을 벗겨내면 피부에 와 닿는 만만치 않은 이야기들을 하는데, 특히 디스토피아를 다룬 영화중에서 우회적으로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다. 이 영화 이 딱
툿징 포교 베네딕토수녀회의 이영숙 소피아 수녀(78세)가 심장병과 뇌출혈로 21일 정오에 의정부성모병원에서 선종했다. 이영숙 수녀는 선종하기 전에 시신을 기증했기 때문에, 서울 돈암동에 자리한 툿징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녀원 성당에서 이 수녀의 명복을 빌며 연도를 바치고 있다. 장례미사는 오는 23일 토요일 오전 10시 서울수녀원 성당에서 봉헌된다.이영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