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품없던 좁은 골목길이 새 옷을 입었다.겨우내 쓰레기로 의심받으며 구석에 쌓여있던 스티로폼 상자는 누군가의 소박한 상자 텃밭이었던 거다. 스티로폼 상자에 심은 상추 싹은 벌써 손가락 길이만큼 자랐다. 올해는 욕심이 더 났는지 맞은편에 보도블록을 세워 흙을 채우고 고추를 심었다. 두 줄로 세워진 텃밭 때문에 골목은 네 뼘 길이만큼 좁아졌지만, 그의 초록색 욕
“사랑하는 하느님,위험을 무릅쓰고 선을 감행하는 이들을 보호해 주십시오.”메이데이를 맞아 조카 박수현 양이삼촌 박종인 신부(예수회)에게 보내는 응원 메시지.(2013년 5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빨래를 널려고 하는데옷걸이 하나를 집으니 수십 개가 엉켜서 딸려 올라온다.지난번에 빨래를 걷고 나서 아무렇게나 던져두었기 때문이다.가지런히 정리해 둘 것어디 옷걸이 뿐이랴. 윤병우화가. 전공은 국문학이지만 20여 년 동안 그림을 그려 왔다. 4대강 답사를 시작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탈핵, 송전탑, 비정규직, 정신대 할머니 등 사회적 이슈가 있는
하삼두 (스테파노)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동아대학교,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현재 밀양의 산골에 살며 문인화와 전례미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동안 성당과 수도원, 기타 교회 관련 시설에서 미술작업을 했다. , 등 명상그림집을 펴냈다.
안녕하세요. 꼴베입니다.골목 안을 향기로 가득 채우던 라일락이 지고 있네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선물할 계기도 마땅치 않고, 개인적으로 사람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보려고 바쁘게 지내다보니 좀 쉬게 되었습니다. 제가 게을러서 그런 것처럼 느껴지신다면 기분 탓일 겁니다.봄이 되니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네요.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연필로, 잉크가
며칠 동안 모로코에서 온 건축학자 부부는 날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출퇴근하면서 열성적으로 연구에 몰두했고, 카미스와 나는 알렉산드리아 시내에 산재해 있는 고대의 유적지를 구석구석 찾아다녔다.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의 죽음과 함께 300년간의 그리스인에 의한 통치가 끝남과 동시에 로마 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한 이집트는, 그 후
딸아이가 고국에 새로운 일자리를 갖게 되었다. 뉴질랜드를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내심 흐뭇하면서도 왠지 가을 코스모스 가지마냥 마음이 흔들거린다. 원하던 학업을 마치고 일을 찾아 부모 곁을 떠나는 터라 이번은 감회가 다르다. 아들 녀석도 몇 년 전 고국에 가서 둥지를 틀었다. 이번에 딸까지 떠나면 아내와 둘만 남게 된다. 함께 추억여행 하나 만들자는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
서강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 도서관 ‘단비’는 지난 4월 16일에 열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학생자치기구 재인준에 실패했다.‘정치색이 짙다’와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총학생회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자치기구가정치색을 갖는 것은 옳지 않다”는 비판을 가했다.학생들 대부분도 무관심하거나 총학생회의 의견에 동의했다.78명의 대표자 중 단비의
가진 거라곤 말뿐이었다. 쉼 없이 이야기를 지어내고 귀기울이게 하여 듣는 이의 마음속에 생각의 씨를 뿌리는 재주뿐이었다. 그마저 상대방이 들어줘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 생각의 씨가 자라나 상대가 더 나은 것, 더 좋은 쪽을 바라봐 주길 비는 것,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였다.설득은 언제나 어려웠다. 한 번도 쉽사리 얻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아내의 고통도
교황이 주인공인 종교영화가 있다. 벌써 하품 나올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를 ‘이탈리아의 우디 앨런’이라 불리는 블랙코미디 영화의 대가이자, 베를루스코니를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정치적 언사로도 유명한 난니 모레티가 만들었다면? 어, 그럼, 마음을 고쳐먹고, 봐줄만할 것 같다.이 영화는 2011년에 제작되었으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전무후무한 교황직 사임
4월은 확실히 잔인한 달이다. T. S. 엘리엇이 앞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내 입에서 비슷한 탄식이 나왔을 것이다. 열두 달 주기로 순환하는 우리네 삶이 그렇다는 것을 해가 갈수록 더 확연히 느끼는데 올해도 예외 없이 당하고 말았다.우리가 흔히 새봄을 가리켜 하는 말 중에 ‘꽃피는 춘삼월’이란 표현이 있다. 그 춘삼월은 아직 추위가 꽃샘이니
봄바람이 나고 싶은 대학생의 마음으로, 출발~4월, 5월 두 달은 프랑스의 대학생들에게 가장 가혹한 시기다. 매서웠던 겨울바람이 햇살을 가득 품고 녹아내린 봄이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도서관 입구에 줄을 서서 책장을 넘기며 공원에서의 여유를 그저 상상하는 데 그치곤 한다. 5월 말, 6월은 특히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중요한 기말고사 기간이기 때문이다.그래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살아간다는 것이 고스란히 잘못의 연속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그 잘못에서 벗어나는 것이 삶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모든 종교는 그 문제를 다루고 있고 제대로 된 길을 제시한 종교는 인류사적 종교로 자리 잡는다.공자에 의해 개창된 유교도 마찬가지다. 공자도 인간이 어떻게 하면 잘못에서 벗어나게 되는 지 그 방안을 제시했다.
작년 4월 입사 후 첫 취재는 일본에서 온 천막마당극단 연출가 이케우치 분페이 씨의 인터뷰였다. 취재를 나가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그동안 살면서 익힌 능력을 재주껏 동원해야 하는 그 막막함이란. ‘벌거벗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 같다’던 기분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내가 땀을 삐질거리면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옆에서는 극단 단원들이 총출동
이코니온이라고 불리던 콘야는 지중해에서 250킬로미터, 흑해에서 500킬로미터, 수도인 앙카라에서 남쪽으로 250킬로미터 떨어져 내륙에 위치한 해발고도 1030미터의 고원도시다. 로마제국 당시 시리아에서 에페소와 로마에 이르는 대로가 지나가는 바람에 상업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고, 풍광이 아름답고 비옥한 땅이었다. 피시디아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강물로 비옥한
“저는 별 거 없어요. 그냥 이웃들하고 잘 지내면서 사는 것뿐이에요.”전화기 너머 작은 목소리는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내세울 것 없고, 이야기해줄 것도 없다던 그는 인터뷰 대상으로 다른 사람을 소개했지만 그럴수록 그의 ‘별 거 없는’ 이야기가 궁금했다.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하고 싶은 몇 가지 이유를 더 이야기한 끝에 어렵게 수락을 받아
우리집엔 책이 많다.그동안 나름 많은 책을 읽었다.그런데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나는 것이 없다.누군가 어떤 책에 감명 받았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말이 없다.내가 책을 읽는 목적은 뭔가 궁금할 때다.현실에서 뭔가 불편하거나 의문이 생길 때 책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인생에서 어떤 위험부담도 지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길로 가고자 했지만책에서 내가 찾는 안전한
지난 사순 시기의 어느 날.두물머리 지킴이들이 다시 만났다.930일, 꼬박 미사로 지켰던 그 자리.전보다 길은 쉬워졌지만 곳곳의 이정표가 사라져미사 터는 오히려 알아보기 힘들어졌다.사랑방과 미사 제대가 있던 곳에는황량하게도 ‘두물머리’ 네 글자를 새긴큰 돌덩어리 하나가 앉아 있다.미사를 드리는 중에 몰려든 구름. 그 사이로 빛이 보인다. 빛은 순식간에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