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거라곤 말뿐이었다. 쉼 없이 이야기를 지어내고 귀기울이게 하여 듣는 이의 마음속에 생각의 씨를 뿌리는 재주뿐이었다. 그마저 상대방이 들어줘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 생각의 씨가 자라나 상대가 더 나은 것, 더 좋은 쪽을 바라봐 주길 비는 것,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였다.설득은 언제나 어려웠다. 한 번도 쉽사리 얻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아내의 고통도
교황이 주인공인 종교영화가 있다. 벌써 하품 나올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를 ‘이탈리아의 우디 앨런’이라 불리는 블랙코미디 영화의 대가이자, 베를루스코니를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정치적 언사로도 유명한 난니 모레티가 만들었다면? 어, 그럼, 마음을 고쳐먹고, 봐줄만할 것 같다.이 영화는 2011년에 제작되었으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전무후무한 교황직 사임
4월은 확실히 잔인한 달이다. T. S. 엘리엇이 앞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내 입에서 비슷한 탄식이 나왔을 것이다. 열두 달 주기로 순환하는 우리네 삶이 그렇다는 것을 해가 갈수록 더 확연히 느끼는데 올해도 예외 없이 당하고 말았다.우리가 흔히 새봄을 가리켜 하는 말 중에 ‘꽃피는 춘삼월’이란 표현이 있다. 그 춘삼월은 아직 추위가 꽃샘이니
봄바람이 나고 싶은 대학생의 마음으로, 출발~4월, 5월 두 달은 프랑스의 대학생들에게 가장 가혹한 시기다. 매서웠던 겨울바람이 햇살을 가득 품고 녹아내린 봄이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도서관 입구에 줄을 서서 책장을 넘기며 공원에서의 여유를 그저 상상하는 데 그치곤 한다. 5월 말, 6월은 특히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중요한 기말고사 기간이기 때문이다.그래
하삼두 (스테파노)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동아대학교,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현재 밀양의 산골에 살며 문인화와 전례미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동안 성당과 수도원, 기타 교회 관련 시설에서 미술작업을 했다. , 등 명상그림집을 펴냈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살아간다는 것이 고스란히 잘못의 연속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그 잘못에서 벗어나는 것이 삶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모든 종교는 그 문제를 다루고 있고 제대로 된 길을 제시한 종교는 인류사적 종교로 자리 잡는다.공자에 의해 개창된 유교도 마찬가지다. 공자도 인간이 어떻게 하면 잘못에서 벗어나게 되는 지 그 방안을 제시했다.
작년 4월 입사 후 첫 취재는 일본에서 온 천막마당극단 연출가 이케우치 분페이 씨의 인터뷰였다. 취재를 나가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그동안 살면서 익힌 능력을 재주껏 동원해야 하는 그 막막함이란. ‘벌거벗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 같다’던 기분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내가 땀을 삐질거리면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옆에서는 극단 단원들이 총출동
이코니온이라고 불리던 콘야는 지중해에서 250킬로미터, 흑해에서 500킬로미터, 수도인 앙카라에서 남쪽으로 250킬로미터 떨어져 내륙에 위치한 해발고도 1030미터의 고원도시다. 로마제국 당시 시리아에서 에페소와 로마에 이르는 대로가 지나가는 바람에 상업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고, 풍광이 아름답고 비옥한 땅이었다. 피시디아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강물로 비옥한
“저는 별 거 없어요. 그냥 이웃들하고 잘 지내면서 사는 것뿐이에요.”전화기 너머 작은 목소리는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내세울 것 없고, 이야기해줄 것도 없다던 그는 인터뷰 대상으로 다른 사람을 소개했지만 그럴수록 그의 ‘별 거 없는’ 이야기가 궁금했다.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하고 싶은 몇 가지 이유를 더 이야기한 끝에 어렵게 수락을 받아
우리집엔 책이 많다.그동안 나름 많은 책을 읽었다.그런데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나는 것이 없다.누군가 어떤 책에 감명 받았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말이 없다.내가 책을 읽는 목적은 뭔가 궁금할 때다.현실에서 뭔가 불편하거나 의문이 생길 때 책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인생에서 어떤 위험부담도 지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길로 가고자 했지만책에서 내가 찾는 안전한
지난 사순 시기의 어느 날.두물머리 지킴이들이 다시 만났다.930일, 꼬박 미사로 지켰던 그 자리.전보다 길은 쉬워졌지만 곳곳의 이정표가 사라져미사 터는 오히려 알아보기 힘들어졌다.사랑방과 미사 제대가 있던 곳에는황량하게도 ‘두물머리’ 네 글자를 새긴큰 돌덩어리 하나가 앉아 있다.미사를 드리는 중에 몰려든 구름. 그 사이로 빛이 보인다. 빛은 순식간에 사람
육우당 10주기 추모기도회, 극소수의 언론에게만 사진 촬영을 허락했다.기도회 시작 전 정욜 활동가는 “휴대전화 촬영을 삼가주세요”라고 당부했다.그들의 가족, 친구, 동료에게그들의 성정체성이 알려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여기에 있지만, 있음을 알릴 수 없는존재하지만, 목소리를 낼 수 없는울고 있지만, 왜 우는지 알릴 수 없는그들은 성소수자다.
제대로 치정극이다. 치정을 ‘말’로 차곡차곡 쌓아올리면 셰익스피어 식의 치정극이 되고, 말도 명분도 없이 ‘몸’만 움직이면 포르노가 되는 게 아닐까.내 연애가 남들의 규범과 관습을 벗어나는 곳에 둥지를 틀면, 흔한 말로 치정(癡情)이 된다. 사전적인 풀이는 어리석고 어지러운 열정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남들 눈에 그렇다는 것이다. 사랑인지 치정인지의 잣대는
의식화, 커리큘럼, 또 하나의 통제지금은 그런 말을 별로 쓰지 않지만 예전에 ‘의식화’ 하면 상당히 불온한 어떤 것을 가리킬 때 쓰였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에 따르면, 이미 민중들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의식화하면서 사태를 직시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에서 행해졌다는 의식화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의식화를 넘어서는 재의식화의 과정이다. 파울
올해는 가지 못하였지만깊은 마음을 들여다보면 거기에 늘 피어있는산수유꽃입니다.‘영원불멸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닌아름다운 산동의 산수유꽃을직접 가서 볼 날이 오겠지요.(2011년 봄, 산동 구례)박홍기 신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의사는 내 배 속에 주먹 크기만 한 혹이 있어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검사 후 이틀 뒤에 수술이 잡혔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2년 전, 처음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난 수술 도중에 깨어날까 봐 너무 무서웠다(이런 내용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올해 또 한 번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까봐 두
광대한 사암 지역에 퍼져있는 카파도키아는 마치 예수가 세례 후 대면해야 했던 광야를 연상시킨다. 그곳에서 예수는 사탄과 세 번의 영적 전쟁을 치르고 고요한 가운데 아침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 아침은 카파도키아에 무슬림이 밀려왔을 때도 길고 오래 유지되었다.카파도키아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남동쪽으로 280킬로미터 떨어진 네브쉐히르 주 일대의 광활한 고원지
콜트콜텍 농성장의 마스코트 브라우니.아래로 살짝 처진 눈이 매력 포인트지만, 순한 인상처럼 사람을 너무 좋아해 용역이 와도 꼬리를 흔든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 이날 저녁에도 농성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브라우니는 신이 났다. 게다가 미사 시간 내내 풍겨 오던 닭꼬치 굽는 냄새에 마냥 기분이 좋았다. 이현수 신부가 닭꼬치를 내밀자 브라우니는 ‘손 안대고 고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