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첫 해 빼고는 된장을 손수 담가 먹어보지 못했다. 해마다 야생동물 때문에 콩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콩나물 대가리 같은 싹이 얼굴을 내밀 때는 비둘기가, 잎이 어느 정도 자라기 시작하면 고라니나 토끼가 콩잎을 죄다 뜯어먹는 통에 씨나 건지면 다행이라 여겨야 했다. 그러니 된장이나 청국장 담가 먹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고, 푸
그러니까 작년 여름 전남 영광 태청산에서 부부를 만났다. 첫인상이 범상치 않았다. 조선시대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 후줄근한 한복을 입고 삼베로 만든 두건을 머리에 쓴 남편은 손재주가 대단했다. 주변에 긴 풀들을 한 아름 모아오더니 그것을 이리저리 엮어 쓰임새 있는 물건을 만들어 보였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서 두런두런 재미난 이야기도 풀어내고 영락없는 옛날
미하엘 엔데의 에 이렇게 깊은 뜻이 있었다니! 미하엘 엔데는 우리에게 의 작가로 매우 친숙하다. 특히 는 을 통해 더욱 폭발적인 사랑을 받기도 했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모모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아니라 로맹 가리의 에 등장하
옆집에 화가가 살면, ‘티’가 날까? 그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그의 집에 놀러가 방안 가득한 화구를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까? 경기도 고양시 샘터마을 3단지 주민들은 새로 이사 온 이웃이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걸, 그가 이사 온지 채 한 달이 되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 복도와 엘리베이터에서 전시회
구상은 귀국 후에 글만 읽고 시 작업에 몰두했는데, 마침 폐병까지 결렸다. 전쟁 말기에 일제가 폐병에 걸린 시인마저 군대에 징집하려고 하자, 이를 피하고자 친일 조선인이 함경도 원산 지역에서 발행하던 기자로 일했다. 이 시기를 두고 구상은 “목숨을 부지하려는 일념과 펜을 잡는다는 매혹에 식민지 어용(御用)신문의 기자가 되어 용왕 앞의 토끼처
하삼두 (스테파노)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동아대학교,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현재 밀양의 산골에 살며 문인화와 전례미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동안 성당과 수도원, 기타 교회관련시설에서 미술작업을 했다. 등 명상그림집을 펴냈다.
여행을 ‘낯선 곳을 향한 이동’이라고 했을 때, 인도는 그러한 여행의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하는 여행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 달라진 언어와 사람들의 얼굴과 음식, 그곳을 채우는 온도와 냄새에 이국임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삶의 습관에 있어서 강렬하게 부딪히는 경험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인도는 나에게 모
안녕하세요? 지난 3월 에 의 저자로 소개된 적이 있는 ‘플루티스트 용서해 셰프’입니다. 이렇게 제 소개를 하는 이유는 음악가에서 요리사가 된 제 모습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저는 지금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가 과거 서울시향에서 플루티스트로 활동할 때 호스피스 센터에서 음악 봉사자
15일 오후, 서울 대한문에서 열린 밀양 주민과 쌍용차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에 참석한 수도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인연으로 얽히고설킨 인간의 삶을 매듭만큼 잘 표현해 주는 예술도 없다. 한 오라기의 끈을 반으로 접어서 두 가닥을 질서 있게 엮어서 균형을 맞춰 조여야 하나의 무늬가 살아난다. 이는 이웃들과 조화롭고 균형 잡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이 완성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전통 매듭 복원에 평생을 바친 인간문화재 매듭장 김희진 율리안나 선생. 미수를 앞둔
한OO 씨는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자신이 직접 회사를 차려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입지전적 인물이다. 훤칠한 키에 영화배우처럼 멋진 인상을 가진 그가 서울에서 산골 마을로 내려온 것은 20여 년 전이었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던지 위암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치료하면서 검사해보니 심장질환과 대장암, 식도암에 당뇨까지 온몸이 망가져 있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새벽 어스름. 높이 치솟은 모스크의 미나렛에서 아잔(Azan, 이슬람교에서, 예배 시각을 알리기 위하여 큰 소리로 외치는 일)이 울려 퍼지자, 비로소 북아프리카 최대 이슬람 도시 카이로에 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무슬림들의 하루 생활 리듬을 결정짓는 시계소리와도 같은 아잔이 울려 퍼지자, 거리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그
2011년 7월부로 강정 주민이 된 문정현 신부.바닷바람에 검게 그을린 문 신부의 얼굴에는 길 위의 삶이 주는 피곤함이 묻어나지만,전경에게 호통 치는 목소리는 언제나 우렁차고,강정천을 바라보는 눈빛은 맑고도 깊다.그는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7월 28일부터 시작되는 강정 생명평화대행진에 함께한다.매일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을 지키는 지팡이 진 두 다리로.“강정에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요한 14,9)(포이에마, 2013)이란 책을 쓴 박총은 이 말이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 중 가장 무섭다”고 말했다. 일평생 예수와 함께하고도 이 말을 똑같이 들을까 두렵다는 것이다. 자신뿐 아니라 시시때때로 ‘예수란 이름’을 입에 달고 사는 한국 교
방대한 엑스맨 시리즈의 밑그림1984년에 유리 겔라가 한국에 와 텔레비전에서 한 판 쇼를 벌였다. 고장난 가전제품도 고치는 등 몇 가지 초능력을 발휘하는데 숟가락 휘는 것은 나도 놀랐다. 같이 따라하면서 나도 조금은 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 사기였다고 하지만. 그런 낮은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초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이 영화에서는 돌연변이라 부른다.엑스맨
“수 · 금 · 지 · 화 · 목 · 토 · 천 · 해 · 명.” 과거에는 과학 시간에 태양계 행성의 종류를 이렇게 외웠다. 그러나 태양계의 제일 끝에 존재하는 행성 명왕성은 2006년에 퇴출당했다. 퇴출 이유는 명왕성이 질량과 크기가 작아, 태양계의 수십 개의 별들에 비해 행성으로 인정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1930년에 발견되어 2006년에 퇴출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콜트콜텍 현장 미사 ‘기운팍팍’.해고자들 외에는 인적도, 불빛도, 창문도 없는 공장에서 미사를 드린 지 2년이다.매월 둘째 주 목요일, 콜트콜텍 공장은 성전이 되고 환대의 집이 됐다. 지치고 황폐했던 해고 노동자들은 “그 시간으로 인해 외롭지 않았다”고 고백했다.노동사목위원회 일꾼들은 겨우 한 달에 한 번 뿐이었다고 했지만, 공장에서
지금 대한민국의 뉴스는 크게 몇 가지 키워드로 단순 분류된다. 여자 연예인 모욕하기, 스포츠 스타 길들이기,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성범죄 상세 보도, 그리고 NLL……. 연예 스포츠 면만 보면 (한심할 정도의) 태평성대 같고, 다른 쪽 뉴스를 보면 (긴박한) 전쟁 상황 같다.실제로 추락한 기체 사진 같은 것은 참혹함 그 자체다.
구상의 자전적인 글 ‘에토스적 시와 삶’을 보면, 그의 문학적 자궁은 어머니였으며, 종교-철학적 자궁은 가톨릭 신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산 이씨 백두진사(白頭進士)의 고명딸이었던 어머니는 글과 붓이 능해서, 구상에게 어려서부터 , , 을 가르쳤으며, 고시조와 이조의 평민소설, 신소설과 한글 토가 달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