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 이부자리를 펴며 갑자기 방이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안방만 넓어진 게 아니고 집이 전체적으로 사이즈를 늘인 게 아닌가 싶게 휑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공간의 여백이 크게 다가온다는 것인데, 왜 그런고 하면 다섯 식구 가운데 둘이 이 집에 없기 때문이다.(다울이 다랑이가 수원 이모 집에 놀러간 지 오늘로 엿새째다. 앞으로 이 주일 정도 뒤에나 집에 돌아올 예정.)다섯이 셋이 되자 많은 것이 다르다. 빨래나 설거지가 양적으로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집이 잘 어질러지지도 않아, 식재료도 훨씬 덜 들어, 소란스러운 일도 거의
얼마 전, 공부 모임이 있어서 외출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을 두고 가는 게 꺼림칙했다. 내가 없으면 밥도 잘 못 챙겨 먹을 것 같고, 뭔가 위험한 일이 닥치지나 않을까 싶고 괜히 마음이 안 놓이는 그런 거 말이다. 될 수 있으면 셋 다 끌고 가고 싶은데 그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차분하게 의견을 물었다."난 안 가. 집에 있을 거야."(다랑이, 다랑이는 차 타고 멀리 나가는 걸 싫어 한다. 안 간다고 할 줄 알았다.)"난 가. 난 엄마 따라갈 거야."(다나, 다나는 외출을 좋아한다. 때때로 오빠들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간다고 할
달래 뿌리를 캐어 보면 귀여운 아기 알뿌리들이 젖먹이 새끼처럼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그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며 삶이 또 삶을 낳는 기적을 가슴에 새기곤 한다. ‘달래 한 포기마저도 자신의 생명력을 확장시키려 애쓰고 있구나. 삶은 다시 삶을 낳는 것으로 이어져야 하는구나. 그렇다면 나는 지금 다른 삶을 새롭게 낳고 있을까?‘ 본뿌리에 안주한 채 머물러 있고 싶어 하는 나는 달래를 캘 때마다 부끄러워진다. 그와 동시에 이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강한 의지가 솟구친다.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만나 책 읽어 주는 활
올해부터 생활에 큰 변화가 생겼다. 다울이가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다. (5학년에 편입) 심지어 남몰래 유치원에 대한 환상을 키워 가고 있던 다나까지 병설 유치원 원생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거의 십삼 년 만에 홀로됨의 자유를 (낮 동안 잠깐이라도) 마주하게 된 셈이다. 이 얼마나 벅찬 변화인가. 한데 아이들 집에 없는 동안 고요히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태극권 수련도 하고.... 오만 가지 활동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글쎄 차 한 잔 여유 있게 마실 시간이 없다.왜냐, 하려고 들면 밭일이 너무 많고 또 다른 어떤 일보다 그
개구리 합창단의 노랫소리가 골짜기를 가득 메운다. 저 멀리 산자락에서는 물안개가 신비롭게 피어오른다. 제비꽃이 피었다. 보들이 매화나무에서는 꽃송이들이 벙긋벙긋 웃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겨우 서너 송이 꽃을 간신히 피워 내던 홍매화도 꽃망울을 많이 매달았다. 달래가 통통해지고 있고, 산지구엽초와 방아도 짜잔 하듯이 소담스런 새싹 다발을 밀어올렸다. 밀은 더 덥수룩해지고 보리도 다울이 머리카락만큼이나 뾰족뾰족 자랐다....이상은 비 온 다음 날 푹신푹신한 땅을 밟고 살금살금 돌아다니며 내가 만난 봄이다. 봄을 찾아다니는 시간은
저녁을 먹고 난 이후 한두 시간은 우리 집 세 아이가 가장 업(!) 되는 시간이다. 놀라울 정도로 셋이 한마음이 되어 신나게 까분다. 고래고래 노래 부르기, 정신이 나간 듯이 춤추기, 즉석 연극 공연, 베개 싸움, 누가누가 가장 우스꽝스러울까 패션쇼.... 이 시간대엔 폭소를 유발하는 호르몬이라도 흐르는 건지 별것 아닌 일로도 온몸으로 웃어 대고, 서로를 웃기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처럼 호들갑스러운 몸짓과 소리를 내면서 보는 사람이 질색하도록 놀고 또 논다. 하지만 나에게는 상기된 아이들을 제압할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 "자,
해가 제법 길어졌음에도 하루가 무척 짧게 느껴진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닌지 놀기 좋아하는 우리집 아이들, 날이 어둑해질 무렵이면 소란스럽게 부엌 문을 열고 들어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벌써 밤이라니!“(다랑)“맞아,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지?“(다나)“재밌게 놀 때는 시간이 더 빨리 간다니까.“(다랑)“맞아, 왜 그럴까?“(다나)손발이 척척 맞는 짝꿍처럼 다랑이가 선창을 하면 다나는 후창을 하고, 두 아이는 차려 놓은 저녁 밥상 앞에서 슬금슬금 반찬을 집어 먹느라 바쁘다. 근데 다울이가 너무 조용하다. 다울이는 어디 간
“엄마, 머리 좀 깎아 줄 수 있어?“한동안 엄마표 이발을 거부하던 다울이가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며칠 전에 저 혼자 머리를 자른다고 하다가 정수리 쪽 윗머리를 싹둑싹둑 밤송이처럼 잘라 놓고는 '괜찮아. 별거 아니야' 하며 너스레를 떨더니 결국 이건 좀 아니구나 싶었나 보다. 나는 돌아온 이발 손님이 무척 반가웠지만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최대한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저녁 준비도 해야 하고 바쁜데.... 안방에 걷어 놓은 빨래 있거든? 그거 다 개면 깎아 줄 수 있을 것도 같네.""응, 알았어. 지금 곧장 갤게!"다
올 고구마 농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짜 내 농사다. 밭 만들기부터 시작해서 모종 기르기, 풀 매기, 바닷물 뿌려 주기, 이랑 덮어 주기.... 다 혼자 해냈다. 그래서인지 요 며칠 고구마를 캐고 있는데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게 재미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직 캐지 않은 고구마 이랑을 보면 (내가 캘 것도 아니면서) 심란해서 한숨만 푹푹 나왔던 것 같은데 올해는 설레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이다!) 뜨근한 방바닥에 좀더 누워 있고 싶어지는 쌀쌀한 아침에도 '오늘은 고구마를 캐는 날이다
떡을 내놓지 못했던 날들에 대한 반성거의 3개월 만에 원고를 쓰려고 앉았다. 어린 아기를 키우며 잠이 모자랄 때도, 손가락이 시릴 정도로 추운 겨울에도, 거센 태풍에 지붕이 날아가는 변을 겪고도 꿋꿋하게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이게 웬일? 지난 원고를 올리던 무렵 아니카와 삐삐가 차례로 새끼를 낳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날을 보내지 않았느냐고, 게다가 산양 식구 순딩이가 들어오면서 부쩍 더 바빠지지 않았냐고 나름 핑계를 끌어와 보지만 글쎄올시다.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내가 나를 속일 수는 없는 법.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내 생
똥똥이가 우리 곁에 찾아온 뒤로 아이들의 일상이 크게 달라졌다. 그동안 세 아이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고양이들을 안방 이부자리에 데려와 함께 뒹굴거리는 걸 큰 기쁨으로 삼았는데, 이제는 ‘고양이 엄금’ 상황이 된 것이다.(문 밖의 고양이들은 언제나처럼 문 열어 달라 야옹거렸지만 아이들은 절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어쩌다 고양이가 문 틈으로 몰래 들어오면 아이들은 냉혹한 경비병이 되어 즉각 내쫓았다. 똥똥이를 지키기 위해!) 대신에 눈꼽도 떼지 않고 똥똥이 있는 상자로 다가가 아침 인사를 나누고 밥 주고 물 먹이고 똥 치우느라
드디어 동화를 쓸 때가 되었나? 너무도 동화 같은 며칠을 겪었다. 그러니까 그 시작은 다랑이의 호언장담.“엄마, 난 이번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한테 앵무새 선물을 받을 거야. 아니면 새나.”그 말을 듣고 우린 모두 비웃었다. 새는 무슨 새, 마당에 나가서 맨 손으로 참새를 잡아 온다면 모를까 뜬금없이 새 선물이라니.... 나는 새는 물건이 아니고 새 입장에서는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는 게 좋을 거라는 말로 다랑이의 집념을 단념시키려 애썼다. (다랑이는 고집도 세고 집요한 구석이 있어서 만약 이대로 간다면 크리스마스 때까지
이모한테서 카메라를 얻은 다울이, 처음엔 작동법을 잘 모르니 사진 찍는 용도로만 사용하다가 몇 달 전부터 동영상 찍는 법을 알아내어 감독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주위에 널린 배우들(다랑, 다나, 삐삐, 아니카, 정겨울, 정다울)을 현장 섭외하여 갖가지 영화를 만드는 거다. 지금껏 만든 영화만 해도 족히 수십 편은 될 터인데 대부분이 괴물 영화나 재난 영화다. 쫓고 쫓기고 까불고 소리 지르는 아사리난장판 같은 영화라나? 제대로 된 영화 좀 찍어 보라는 나의 타박에 다울이는 이렇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나도 제대로 된 영화를 찍고 싶은
십수 년 전, 대안학교 생활교사로 지낼 때, 이야기 듣는 것과 이야기 들려주는 걸 모두 좋아하던 한 아이가 있었다. 이야기를 들려 주고 이야기를 들어 주며 참 많이 친해졌던 아이인데 코로나 시국을 맞아 갑자기 그 아이가 들려 준 짧고 강렬한 이야기가 생각났다.“옛날에 어떤 마을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마녀가 나타나서 마법의 가루를 솔솔 뿌렸어. 그러자 사람들은 개미만큼 작아졌지. 개미만큼 작아져서 작게 작게 살았대.”작아진 다음에 다시 원래 모습대로 커지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고, 그냥 작게 작게 살았다니 엄청난 반전 아닌가
어느 날 다울이의 질문.“엄마, 옛날이야기에 보면 셋째가 최고라고 그러는 것 같아. 얼굴도 성격도 꾀도 뭐든지 첫째 둘째보다 낫다고.... 도대체 왜 그런 걸까?”“글쎄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우리 집 셋째 다나를 한번 떠올려 봐.”“다나는 괴물이지. 얼굴도 못생기고 성격도 괴팍하고 꾀도 없고....”다울이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다나가 벌써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엄마, 오빠가 나 보고 괴물이래. 내가 정말 괴물이야?”“무슨 소리야. 이렇게 예쁜 괴물이 어디 있다고. 다나는 이쁜이야. 엄마의 사랑 이쁜이!”내가 다
설을 앞두고 며칠 전, 아이들이 간식상 앞에 빙 둘러앉았다. 이웃집 겨울이, 다울이까지 모두 다섯 아이가 간식으로 내어 준 고구마전을 먹으며 한바탕 수다 잔치를 벌이는데, 그날의 주제는 세상에서 제일로 무서운 귀신이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아는 무서운 귀신을 다 끄집어 내어 누가누가 더 무섭나 선발이라도 할 기세였다.“너희 달걀귀신 알아? 달걀귀신은 얼굴이 없는데도 사람 잡아먹는다.”“그럼 신발 귀신 알아? 신발 귀신은 신발까지 통째로 먹는다.”“모자 귀신이 더 무서워. 모자 귀신은 큰 모자로 뒤집어 씌운 다음에 잡아 먹어.”“똥 귀
뭐니 뭐니(머니머니) 해도 복 중에 제일은 사람복(인복)이라고 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살면서 지금껏 어디를 가든 좋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살아왔기 때문이다. 소신껏 시골살이를 하게 된 것도 결국 첫 귀농지에서부터 좋은 사람들이 끌어 주고 붙잡아 준 덕분인데, 가끔 그때 그 사람들을 한 사람씩 떠올리다 보면 나무실 마을 할머니들이(특히 설매실 할머니가) 지나가는 대목에서 버퍼링 현상 비슷한 게 일어난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찾아뵈어야 하는데‘ 하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마음의 짐 때문
도대체 뭔 바람일까? 작은 동물 농장이라도 만들려는 걸까? 산양 한번 키워 보지 않겠냐는 친구의 제안에 고심 끝에 수락을 한 상태에서, 새끼 고양이 두 마리까지 식구로 맞게 되었다. 갑자기 웬 고양이냐고? 그러게나 말이다. 장흥에 사는 지인이 수로에 빠진 고양이를 구했는데 누가 좀 데려갔으면 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고양이를 데려갈 누군가가 내가 될 줄은 몰랐다. 아이들이 그 소식을 들으면 분명히 고양이 키우고 싶다고 할 것 같아서 한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니까. 그랬는데 자꾸만 내 안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엄마는 이모가 될 수 없다!’나의 지론이다. 나도 한때는 얼마든지 이모처럼 한결같이 너그럽고 부드럽고 상냥해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모는 이모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엄마가 이모가 되려고 한다면 일종의 감정노동 상태에 빠지거나 아이들을 응석받이로 만들 수가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나의 전략은 아이들에게 이모들을 만날 기회를 열어 두는 것!이달 초쯤에 아는 언니들이 온다고 했을 때,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언니들로 말할 것 같으면 십여 년쯤 전에 같이 그림책 공부 모임을 하며 만난 사이다. 당시엔 그림책
농부에게 가을걷이철은 성적표를 받아 드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땅콩을 손질하며 몇 되나 나올까 가늠해 본다. 볕에 널어 놓은 들깨를 쓰다듬으며 우리 식구 1년 먹을 만큼 양이 넉넉한가 헤아려 본다. 고구마 한 줄 캐어 놓고 알이 잘 들은 건가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바삭하게 마른 토란대를 거두어 들이며 몇 번이나 나물해 먹을 양인지 셈해 보기도 한다.전체적으로 봤을 때 올해 가을 성적은 '미'와 '양' 사이쯤 되는 것 같다. 가을장마와 잦은 태풍, 멧돼지와 고라니라는 변수까지 작용하여 주작목인 나락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