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출근 준비를 하고, 남편은 아침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아침 시간이었다. 바쁜 우리와는 달리 아이들은 느긋하다. 안 보인다 싶으면 소파 위 마른 빨래더미 틈에서 수건 한 장을 빼서 덮고 누워 있는 로, 옷 입다 말고 방바닥 한 점을 응시하며 멍 때리는 욜라, 세수도 안 한 채 독서나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메리는 유치원이고 학교고 어디 갈 데가 없는 애들 같다.아이들은 늘어진 테이프처럼 느릿느릿한데 나는 2배속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각자 다른 시간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단순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유치원 차를
원래 늦잠을 자지만 일요일엔 더욱 늦잠을 잔다. 새벽녘 잠에서 깬 아이가 어스름 창을 배경으로 기도하는 엄마 모습에 안도하며 달콤한 잠에 다시 빠져드는 유년 시절을 선사하고 싶지만, 자기들보다 더 늦게까지 자는 엄마를 겨우 깨우면 기름진 얼굴, 떡진 머리, 눈꼽 낀 얼굴로 일어나곤 하는 엄마 모습이라는 추억을 선사하는 중이다. 메리와 내가 꼴찌를 다투는데 그래도 메리보다 일찍 일어난 날은 기분이 좋다. 외갓집에 가면 마당에서 나는 개 짖는 소리, 창호지를 통과해 번지는 햇살, 바깥에서 들리는 어른들의 말소리, 아궁이 불 때는 냄새에
예전의 나는 분명히 욜라 즐거운 육아일기를 썼다. 실은 매우 괴로운 처지를 반어적으로 나타낸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아이를 셋 키우게 되었는데 아이는 내 인생의 침입자라고 해도 맞는 말이었다. 순화하면 손님 정도일까. 물론 미화하면 선물이나 축복이 된다. 선물이나 축복이면 답이 없고, 손님이라고 해도 그 손님은 새로운 세상이 태어난 것이라서 자기 생각밖에 안 한다. 저 밖에 없다. 나를 변방으로 밀어내고 주인이 되고자 한다. 그 손님 눈치를 보고 쩔쩔매다 주인 자리를 내주어야 하나 고민도 했고, 다 함께 잘 살아 보자고 평화협정을
약속했던 상담시간이 되어, 교실 뒷문을 노크했다. 실내화가 아닌 신발을 신고 있어서일까, 학부모가 되어 아이의 교실을 방문하는 일은 늘 어색하다.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의 교실은 어쩐지 살아 있는 것 같다. 문을 열자 교실 뒷벽에 꾸며진 아이들의 그림, 종이 접기 작품들이 방금 전까지 와글와글 시끄러웠는데 순간 조용해진다. 아이들의 이름이 붙여진 의자와 책상도 꼼짝하지 않고 놓여 있다. 하지만 이내 개구쟁이처럼 킥킥 떠들어 댄다. 3학년보다는 2학년이, 2학년보다는 1학년의 빈 교실이 더 시끄럽다. 그때, 교실의 이런
여름방학도, 휴가도 보냈지만 이야기의 계절은 좀체 가지 않아 지난봄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더위에 펄펄 열이 나면서도 ‘아, 그때 그 봄날이.... 어땠었더라.’를 더듬고 있는 나도 나지만, 그걸 또 들어 주려는 독자들도 시차 적응이 안 되긴 매한가지일 것 같다. 그러나 봄을 지나야 여름이 되고, 가을도 오는 법이니, 부모상담의 두 번째 관문이었던 메리 편으로 서둘러 들어가 보겠다. 메리는 내게 음.... 항상 녹록지가 않은 아이다. 지금껏 그랬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맞추지를 못하고 내가 생각하는 상식선에서 메리를 키
머지않아 여름방학이다. 여름휴가도 다가온다. 물론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시간을 앞으로 돌려 올 초의 일을 떠올리려 한다. 가물가물한 과거의 일을. 기억하는 이 없겠지만 내가 저번에 ‘충격적인 학부모 상담이 어쩌고’ 하면서 쓸데없이 다음 이야기에 대해 예고를 했기 때문이다. 매사에 성실성이 부족한 나라고는 해도 약속은 지키려 하는데.... 어쩌다 보니 많은 부분 양심을 상실하여 일말의 양심도 소중해진 탓이라고 해 두자.나는 내 명의로 된 번듯한 집은 없지만, 은행 빚은 좀 지고 있다. 은행에 돈 빌리러 갈 때 비굴한 게
새벽 6시에 일어났는데도 어김없이 늦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 주고 가는 출근길. 오늘도 지각을 하느냐 마느냐다. 이렇게 된 거 연가를 내고 잠깐 놀러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갈등하면서도 열심히 달려왔더니, 어쨌거나 세이프. 아직은 9시 전이다. 다급히 컴퓨터를 켜고 숨을 고른 뒤, 아까부터 일했던 사람처럼 진지하게 앉아 있는데, 남편한테서 문자가 왔다. 집을 치우다가 메리의 일기장을 보았단다. 일기장을? 남편은 아이들의 현재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 스타일로 아이의 사생활에 대해선 그리 궁금해 하지도, 캐려 하지도 않는 인물이다.
아이들이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해 줄까 생각해 보았다. 그랬더니 영 자신이 없는 거다. ‘당신은 어떤 유형의 엄마인가요?’ 하는 자가 테스트를 하면 일단 성질을 잘 부리는 엄마가 나온다.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계속 화가 나 있는 엄마. 특히 아침에 그렇다. 보통날의 아침이면 자신에 대해 돌아볼 겨를도 없지만, 가끔은 내가 연기 쫌 하는 배우 같아서 놀라곤 한다. 내가 있는 곳이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장르는 재난영화다. 나는 혼돈과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로 생사를 건 다급함, 궁지에 몰린 인간을 연기한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성공했냐고 묻는다. 나는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한다. 그이가 원하는 대답은 결과에 대해서고, 한 달간의 다이어트 프로젝트는 분명히 어떤 결과를 냈지만, 그건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고 나는 과거와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육량이 늘어나고 체지방이 줄고, 그래서 체지방지수 앞자리 수가 바뀌었다는 건 성공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 완전히 타락한 삶을 살고 있다면? 프로젝트 기간 동안 먹을 수 없었던 세속 음식에 제 몸을 제물처럼 바치고 운동은커녕 구석에 나자빠져서 흐리멍텅한 눈으로 삶의 허무를 들이키고 살
나는 편식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음식 중에 안 먹는 재료만 따로 골라내는 법도, 남기는 법도 없다. 그리고 적당량 먹는 법도 없다. 늘 배부르게, 몸에 좋든 나쁘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내가 무엇을 먹는지 모를 만큼, 아니, 외면하면서 먹었다. 물론 내가 먹고 난 빈 밥그릇과 국, 반찬 그릇을 보면 꽤 흐뭇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음으로써 설거지할 물을 아끼고 세제를 아끼고, 처리하는 비용을 아끼고, 거시적으로 지구환경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그 옛날 집집마다 거름통을 가지고 있
욜라의 유치원 생활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욜라는 유치원 학기 초의 긴 탐색기를 거치고 나면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는 크게 나무랄 데 없는 모범생이 된다. 지난 3년 동안 욜라는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과 친구들 간의 관계를 정립하는 나름의 사회생활에 편안히 적응했다고 해도 무방한 것 같다. 얼마 전 유치원 프로젝트 수업 발표회에 갔을 때는 진심으로 깜짝 놀랐었다. 욜라의 유치원은 7세반이 되면 한 가지 주제를 두고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사대로 변주되는 프로젝트 수업을 약 한 달이 넘도록 진행한다. 예를 들어 주제
호젓하게 깊어 가는 밤인데, 집 뒤편 산 쪽 창문 밖으로 수상한 소리가 들린다. 투둑, 파사사. 툭, 투루루. 경사진 산길에 무엇이 떨어져 구르는 소리. 불규칙하게 계속되는 소리. 아, 밤이 떨어지는구나. 밤아, 안녕? 안녕! 그리고.... 잘 가. 나는 밤을 만나는 동시에 밤과 이별을 한다. 왜냐면 나는 그 밤을 찾아 두꺼운 장화를 신고 집게를 들고 굳이 풀숲을 헤치지 않을 작정이므로. 밤을 영영 잃어버리고 말 것이므로. 우리 집 뒷동산 밤은 그래서 뭇 밤들과 다른 삶을 산다. 끓는 물에 폭 삶겨 사람 뱃속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다면 그냥 풀리지 않은 채로 두는 것도 좋다. 왜냐하면 아무리 발버둥 치며 답을 구하려 해 봤자 똑같은 벽에 부딪힐 게 뻔하니까. 그런데 그렇게 벽에 머리를 꽝꽝 찧다가 내가 왜 그랬나조차 잊어버릴 즈음 어떤 사람이 나타난다. 물론 그 사람은 내 고민을 모르고, 자신조차 어떤 고민으로 머리를 벽에 계속 찧고 있는 지경인데, 그가 하는 말을 입 벌리고 듣다 어느 순간 어, 하고 내 앞의 어떤 벽이 스르륵 허물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가 내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 준 것인데, 그것은 꼭 문제를 푸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아빠를 반갑게 맞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흐뭇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건 아닌데 싶기도 하다.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저녁나절 내내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였다. 무겁게 장을 봐 와서 요리를 하고, 아이들 밥상을 차렸다. 자신의 저녁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아이들이 밥 먹는 것, 반찬 집어 먹는 것만 보았다. 그런데 제길. 아이들이 밥을 시원스레 먹질 않는다. 내 입에만 맛없는 게 아닌가 보다. “얘들아, 장난치지 말고 어서 먹어. 안 그럼 치워 버릴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각박해져 가는데, 마침
- 육아일기 시즌 1을 마무리하며누구나 잘하는 게 하나는 있다고 하는 말을 위안처럼 여기고 살았다. 그래서 당신은 무엇을 잘하십니까? 하는 질문에 답하고자 나름대로 애썼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때로는 웃으면서, ‘정말 하나도 없네!’라고 애써 명랑하게 답했는데, 그러고 나면 어느덧 슬퍼졌다. 겸손해서가 아니고 진심으로 잘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잘하는 게 있을까. 그런데 이번 생은 이미 너무 지나쳐 왔잖아.’ 하며 한탄하다가 ‘예전에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었더라? 왜 그걸 찾아내고 꽃피우지 못했을까?
다음 날, 대회장으로 시간 맞춰 가느라 새벽부터 서둘렀다. 우리 집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이상 걸리는 곳이다. 남편이 가방에 물과 바나나, 과자류를 담는 사이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복싱 물품을 챙겼다. 때릴 때 내 주먹을 보호해 주는 손목 붕대 한 묶음, 이가 부러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마우스피스(착용 순간 입이 튀어나와 버려 한층 못생겨지는 마성의 장비), 암만 뛰어다녀도 발바닥이 안 아픈 복싱화(짧은 다리를 강조해 주는 디자인으로 신자마자 벗고 싶어지는 애증의 신발), 타이츠와 티셔츠, 그밖에 필요한 기타 등등까지 꼼꼼하게 챙
복싱장에 다녀온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선언하듯 말했다.“나 이번에 복싱대회 나가려고!”“하하하. ”웃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기뻤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복싱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어. 그런데 관장님이 다가오더니 ‘이번 대회는 나가셔야죠?’ 그러는 거야. 저번에도 그랬고 저저번에도 그랬잖아. 내가 좀 소질이 있나 봐.” 남편은 웃다가 흠칫했다.“진짜.... 나가게?”“응. 왜....? 맞으면 아플까 봐?”남편은 내 말이 그 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아프긴 하겠지만.... 에헤헤. 뭐 얼마나 맞겠어.... 그래도 아마추어 복싱
당시를 온전히 떠올릴 수는 없지만, 그래서 너무 개탄스럽지만, 그때 내가 떨고 있었던 건 기억난다. 나는 겉옷을 벗는 것도 잊은 채 아무도 없는 집 안의 싸늘한 공기 속을 이리저리 서성였었다. 소파에 앉았다가도 튀어오르길 반복했고, 프흡! 으흣, 흐어엇! 입에서 바람을 뱉는 것처럼 웃었다. 살다 보면 이처럼 우습지 않은데 웃을 때가 있다. 울음이 웃음이 되어 나오거나 화가 나는데도 웃는 때가 있었다. 웃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날도 나는 잘 익은 밤송이가 툭 하고 벌어지듯 공기를 툭, 투둑, 토해 내며 웃음을 뱉어 냈었다. 슬픈
“팔이 아픈데 그 팔을 사고나 수술로 잃었다고 쳐요. 그러면 이제 팔이 아플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도 자꾸 없는 팔이 아프다고 느끼는 거죠.”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심리적으로 느끼는 가상의 통증, 환상통.몸신은 허공에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차례대로 움직여 보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는 듯이. 딩동댕동. 어디선가 음산한 유령의 멜로디가 들려오진 않을까.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어어, 어깨 힘 빼세요.”몸신은 어느새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척추뼈 하나하나를 살피고 있다.“턱을 당기세요. 더, 더, 좀
별 계기도 없이 오른쪽 목에 담이 왔다. 내 나이 좀 더 젊었을 땐 담이 오면 ‘올 것이 왔군. 그래, 올 만했지.’ 하고 수긍을 했다. 추운 데서 이불도 없이 웅크리고 자고 일어나 갑자기 헤드뱅잉을 한다든가 학춤을 춘다든가 계단에서 구르든지 했을 때의 일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잘 자고도 예고 없이 담이 온다. 담 스위치가 온 오프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 같다. 세수를 하고 고개 들 때 삐끗, 아이가 불러서 살짝 돌아볼 때 달깍 하는 식이다. ‘삐삐삐-- 이제부터 담이 내릴 것입니다. 준비하세요. 담이 퍼지는 강도와 범위는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