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가식 없이 성찰해서 개과천선하는 데는 뭐니뭐니 해도 외부에서 가해지는 충격요법이 제일이다. 그것도 밍밍한 집적거림이 아니라 방망이로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아 눈앞에 별이 번쩍일 만큼 원색적인 자극일수록 효과는 더 크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난번에 쓴 칼럼 “사과해야 할 종교는 개신교뿐인가”가 그렇게 큰 분노와 반발을 일으킬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김진호 목사는 개신교를 일컬어 “사과해야 하는 종교”라 했다(한겨레신문 10월 19일 자). 한국의 개신교가 “무례한 자”들이 대표하는 교회가 됐다는 거다. 그는 겸허하게 스스로를 “영향력도 없고 유명하지도 않은 잔챙이 목사”라 했지만 실은 개신교에서 몇 안 되
누가 그랬던가, 담배 끊은 사람과는 상종을 하지 말라고. 독하다는 게 이유다. 나는 담배를 안 피운다. 20년이 넘도록 물고 다니던 것을 끊은 지 꼭 17년 됐다. 이제는 누구라도 아직 장담할 수 없다고는 못할 게다. 나는 과연 독한 사람인가? 솔직히 말하는데 “아니다!” 인내심도 없고, 한번 한다면 하는 결단성도 부족하고, 매사에 물
뚱딴지같은 가상이다. 1년 365일을 다 만우절로 만든다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 사방에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웃음공화국이 될까? 어림없다. 필경 얼마 못 가서 콩가루공화국이 될 게 뻔하다. 비록 장난삼은 거짓말이라도 자꾸 해 버릇하면 결코 헤어나지 못한다는 말씀을 우리는 철들기 전부터 귀 아프게 들어왔다. 거짓말은 으레 또 다른 거짓말을 낳기 때문이다. 하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가 추기경이 되셔서 한국천주교회에는 두 분의 추기경이 계시더니 작년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셨다. 정 추기경의 연세가 80에 가까워지자 과연 새 추기경은 누가 될까? 에 관심이 지대하다. 이 주교, 저 주교의 이름들이 심심찮게 하마평에 오르는 것을 나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러나 주교임명의 선례를 보면 무수히 거론된 이름과는 전혀 엉
“천주교의 신부님 맞으세요?”라고 시작된 헬레나님의 댓글을 보고 화가 나서 이러는 건 아닙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옳으니 어디 한번 해보자고 팔을 걷어붙이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혹시 저의 언행이 헬레나님이 평소에 그리시는 바람직한 사제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돌팔이 사제’의 그것으로 여겨
사방이 뒤숭숭하다. 전시도 아닌데 멀쩡한 함정이 두 동강이가 나 우리의 젊은이들 수 십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원인 규명이 안 된 채 세월만 간다. 밝히지 않는 건지 밝힐 수 없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대명천지에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사랑하는 내 자식 군대 안 보내기 운동이 일어날 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이웃 나라 중국에서는 지진으로 천여 명이 넘는 사
비가 조금 올 거라는 예보는 완전히 빗나갔다. 낮의 길이가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한다는 지난 3월22일 월요일 오후, 나는 시흥 늠내숲길을 걷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자 빗방울이 듣기 시작하더니 점점 제법 굵은 비로 바뀌었다. 우산을 꺼내 쓰고 가까운 절(진관사)을 찾아 걸음을 서둘렀다. 절 처마 밑이라도 얻어볼까 해서였다. 때마침 방문을 열고 내다보는 스님.
인터넷 신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이하 지금여기)가 3월 26일로 창간 1주년을 맞는다. 꼭 1주년에 맞추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지금까지 얹혀살던(?) 영등포구 당산동의 우중충하고 허름한 우리신학연구소를 떠나 서강대학교 옆 예수회센터에 제법 넓고 환한 사무실 한 칸을 얻어 이전하게 되었다. 뜻밖에 예수회의 배려가
점심으로 떡국을 먹으면서 보좌 이세연 신부님이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 어머니와 여러 은인들에게 빨간 내복 대신 빨간 성경책을 사드렸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별안간 내복은 뭐고 성경책은 뭔가 했지만 곧바로 나는 아, 그 얘기구나 하고 속으로 무릎을 쳤다. 이 신부님은 지난 1월에 사제품을 받은 새 신부님이다. 첫
뜬금없는 사랑 타령이다. 때 이른 봄볕 환한 오늘은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것도 사람과 사람, 남자와 여자 사이의 눈물 나게 아름답고도 아픈 사랑 말이다. 날이 갈수록 사람 냄새는 희미해지고 핏발선 눈들의 아귀다툼만 만연한 이 땅의 이웃들에게 조금이라도 따스함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서다. 어느 날, 언뜻 보기에도 참 아름다운 자태의 낯선
“호 신부님 정도의 간절한 말씀과 눈물어린 호소를 할 수 있는 신부님들은 대체 한국교회에 몇 분이나 계실까요? 실로 호 신부님은 우리 한국천주교회의 보배요 땅에 묻힌 보물이자 진주이시지요!!! 그리고 계속 우리의 심금을 울리셔서 더 이상 잠들지 않게, 깨어있도록 해주세요. 보배 중 보배이신 호 신부님, 사랑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dqu
우리신학연구소 상근 직원 6명 중에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공대 기계과 출신 소장은 아예 운전면허증도 없다. 받는 봉급이 넉넉지 않으니 차를 살 형편이 못 되겠지만 요즘처럼 전셋집보다 먼저 차부터 장만하는 게 유행인 세태에 비추어보면 좀 별나다 싶기도 하다. 마음만 있다면야 중고차든 할부차든 못 살
어디에 어떤 용도로 쓰이든 거의 모든 추천서쓰기는 늘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추천 대상자에 대하여 좋든 싫든 직간접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지 않았거나 아예 생판 초면인 사람의 추천서를 쓰는 일은 더욱 난감하다. 뭐라고 써야 하나. 솔직하게 잘 모른다고 쓸까? 머리를 조아리며 추천서를 부탁하는 사람의 딱한 처지를 조금이라도
매월 첫 금요일 아침이면 나는 어김없이 성체를 모시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나 환자들을 방문한다. 가서 그간의 안부를 묻고 기도도 하고 성체를 드린다. 그것을 우리 천주교회는 봉성체(奉聖體)라고 한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본당의 사제들은 사정에 따라 날짜는 조금씩 달라도 다 그렇게 한다. 보통으로 수녀님들이나 구역장, 반장님들이 동행한다. 30년이 넘도록
(* 원고 마감을 앞두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마침 어느 수녀님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그것도 당신 이름은 숨기고 꼭 내 이름으로 내면 좋겠다면서요. 해서 분부대로 그분의 글을 올립니다.) 나는 역사학에 관해서는 빵점이다. 국사, 세계사의 재미있는 이야기 몇 가지는 기억해도, 연대를 외우기는커녕 역사적 사건의 맥조차 잡지 못한다. 신학도 마찬가지로 문외한
참으로 긴 날들이었다. 1월 9일이 발인이니까 355일장을 치른 셈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긴 장례가 아닐까 싶다. 2009년을 하루 남겨두고 서울시와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는 정부의 사과와 보상 등에 관해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경향신문은 다음 날 “눈물... 분노... 용산, 345일만의 승리”라고 머리기사를 뽑았다. 과연 승리인
편집자에게는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들께 성탄과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다. 변변찮은 잡문 나부랭이를 꼬박꼬박 읽어주셔서 고맙다고. 전화도 해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셔서 더더욱 고맙다고. 올해의 한숨과 좌절을 넘어 복되고 희망찬 새해를 기원한다고. 아무쪼록 행복하시라고. 마침 기차길옆작은학교의 강화공동체에서 성탄카드가
읽기, 듣기가 다 민망하고 거슬리는 걸 오래도 참고 견뎌왔다. 다름 아닌 하느님의 말씀, 성경 이야기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 미사 때마다 지난 2005년 3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펴낸 을 봉독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한 마디로 “이건 아니다!”이다. 시도 때도 없이 해대는 예수의 ‘반말지거리&rsquo
평생을 사제로 살면서 본당의 주임이나 보좌를 단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아마 없지 싶다. 나도 한번 따져보자. 지금까지의 사제생활 가운데 처음 3년을 강의선, 조성교, 강근신 신부의 보좌로 살았다. 그리고 30년 동안 손가락을 꼽아봐야 차례가 기억날 열서너 명의 보좌와 함께 살았다. 이상한 현상은 내가 보좌 때의 일들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생각이 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