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셨다. 아니, 그보다는 어머니이신 교회를 상징하는 교황님께서 아파서 신음하는, 불신과 실망으로 지친 세상을 대표하는 우리 땅을 몸소 찾아오신 것이다.미국 가톨릭 신문인 NCR(National Catholic Reporter)는 내게 인터뷰를 청하며 교황님이 가셔서 만나게 될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하고 물었다.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이번 주말에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홀리 네임즈 수녀회 젊은 수녀님들이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우리 수도공동체 국제 모임을 준비하기 위해 모였다. 아프리가 리소토라는 작은 나라에서 두 분의 수녀님, 캐나다 퀘벡에서 두 분의 수녀님, 리소토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미국 수녀님, 그리고 나까지 모두 여섯 명이 모여서 닷새 동안 회의를 했다.미국에 거주하는 사람이
이번 주말에 나는 수녀님들과 피정 지도를 하면서 보냈다. 수녀님들 중에는 내 영적 지도 수녀님도 계시고, 내 교수 수녀님도 계시고, 내 영어를 도와주시는 수녀님도 계셨다. 이제는 팔순을 훨씬 넘긴 그분들을 보며 ‘내가 준비해 온 작업들을 할 수 있을까’하는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너무 늙어버린 수녀님들 앞에서 내 마음은 타들어가고 무거워졌다. 저녁
성주간을 맞으면, 거대한 부활의 신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문 앞에 서있는 느낌이 든다. 박사과정을 준비하면서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 개신교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담당한 적이 있었는데, 성주간이 없는 혹은 성주간의 전례가 없는 부활이 내겐 당혹스럽기까지 했었다. 수난과 부활을 몸소 만져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성주간, 특히 성삼일의 전례는 우리 교회가 지닌
나에게 봄은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들의 하나인 미시시피주에 있는 텃와일러(Tutwiler)로 가는 짐을 꾸리면서부터 시작된다. 올해로 다섯 번째 여행인데,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이 여행은 늘 새롭다. 외국인 선생을 믿고 따라나선 내 학생들을 데리고 남부의 거리를 헤집고 다니면서, 문득 내가 대학 다닐 때 농활 가던 생각도 나고, 새 세대가 가꾸어갈 이
얼마 전 기사에 ‘과학자들이여,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칼럼이 실렸다. 내용인즉, 과학자들이 아니더라도 기후변화를 보면 지구온난화 현상이 심각한데, 왜 그걸 말하지 않는가 하는 항변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기후가 이상하다. 내가 사는 베이 지역은 겨울이 우기로 비가 많이 오는데, 정말 겨울 내내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버클리에서는
아직 겨울 방학의 여유와 한가함을 누리고 싶은데, 시간은 벌써 일상으로 돌아오라고 재촉한다. 긴 여름 방학과는 달리 겨울 방학은 20여 일 밖에 되지 않아서 하고 싶은 일, 또 해야 하는 일을 잘 정해서 하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지친 채 새 학기를 맞는다.나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집에서 성서 통독 피정을 했다. 열흘째 되는 날 요한 묵시록의 “주여 어서 오
세상이 흐리고 희망하기가 힘들다고 기운 빠질 때 즈음이면 대림이 온다. 그런 점에서 교회의 전례는 고단한 인간의 생을 정말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톨릭 신자라면, 한번쯤은 어느 해인가 아주 힘들게 일하고 지친 마음으로 성당에 갔을 때, 보라색 대림초에 불이 켜지고, 대림환의 초록 잎에서 흘러나오는 신선한 생명의 냄새를 우연찮게 만났을 때의 그
가을의 끝자락으로 달려갈 즈음이면, 미국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할로윈이 온다. 늙은 호박의 속을 파내고 촛불을 켜서 호박 등을 만들어 대문 앞에 내어놓고, 유령, 마귀할멈, 프랑켄슈타인 등 놀랍고 괴기스런 장식을 한 달 내내 한다.수녀원도 예외는 아니어서 수도원 이곳저곳에 유령들이 걸려있다. 처음에 미국에 와서는 그 풍속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가만
하루 종일 바람이 불었고, 나는 오늘 처음으로 가을을 느꼈다. 정겹게 따사로운 햇살 속에 부는 바람이 새삼 가을을 절감하게 한다. 그러니까 내가 가을을 느꼈다는 것은, 촘촘한 일상을 살면서도 약간 한눈을 팔며, 하늘이 푸르다든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린다든지 거리를 걷는 꼬마들과 눈이 마주친다든지, 혹은 그저 “하느님” 하고 불러본다든지 하여, 내 마음의 결
학생들과 기도에 관한 수업을 하다가, 학생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기도가 있는지, 혹은 무슨 기도가 나의 삶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질문을 했다. 많은 학생들이 ‘주님의 기도’를 꼽았다. 아주 어릴 때 배웠던 기도이기 때문에, 아무 때나 기도하고 싶을 때는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답변이었다.누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기도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프란
우리는 모두 자유롭기를 원하고 자유를 꿈꾼다. 그러나 자유롭다는 말에 부여하는 의미는 저마다 다르며, 때론 진정한 자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유롭다고 믿으며 살아가기도 한다. 자유로움에 이르는 과정은 어떤 것일까?우리는 모두 병아리 틈에 사는 아기 독수리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독수리의 새끼임에도 불구하고 병아리들 틈에서 자신이 병아리라고 굳게
인류 역사상 언제나 존재해 온 욕구는 거룩함에 관한 욕구이다. 영성사(靈性史)는 결국 인간의 의지로 거룩함에로 나아갈 것인지, 하느님 은총에 의지해서 거룩함에로 나아갈 것인지, 이 두 가지 다른 방법을 놓고,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예를 들어, 은총을 돈을 들여서라도 사야 하던 중세 교회의 행태를 놓고 마르틴 루터는 오직 믿음(Sola F
내가 사는 지역은 여름에도 시원하기로 유명하다. 마크 트웨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여름을 보내고, 내 생애 가장 서늘한 여름을 보냈다고 할 정도니까.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좀 다르다. 갑자기 6월에 비가 내리는 이변을 보이기도 하고, 7월부터 무척 덥다. 물론 한국의 땡볕 더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이곳은 에어컨 같은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이번 미국 가톨릭 신학 학회는 ‘회개’를 주제로 마이애미에서 열렸다. 사실, 젊은 학자들에게 학회는 쉬운 자리가 아니다. 학회 내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그들은 노심초사한다. 책에서만 보아 알던 위대한 학자들이 곁에 앉아 있으면,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혹은 ‘어떻게 나를 (좀 인상적으로) 소개하나’ 등등 온갖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그러나 차츰 시간이 흐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하면, 그건 무슨 뜻일까? 나는 그 사람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그래서 결국 영화 ‘사랑은 강물처럼’에서의 한 대사처럼,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한 인간의 내면은 우주와 같다. 성서를 읽다보면,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 중의 하나가 다윗이다. 이스라엘의 시들을 모아 놓
내가 가르치는 수업 중에 가장 커다란 의미로 남는 수업이 ‘생의 철학’ 수업이다. 이 수업은 한 학기동안 자기 삶을 돌아보고, 각자에게 의문이 되거나 도전이 되는 주제를 하나 정해서, 우리가 공부하는 철학 사상들에 접목하면서, 각자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가능한 한 수업 중 이런저런 묵상도 하고, 날씨가 너무 좋은 날은 15분쯤 침묵하며
“성모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 사랑하올 어머니 찬미하오리다.” 계절의 여왕 오월이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성모의 밤’ 행사다. 5월의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촛불을 켜고 성가를 부르곤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건 어쩌면 성모의 밤 자체보다도, 행사가 끝나고 신자들이 모두 돌아간 뒤 정리하기 직전 그 짧은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달콤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누군가는 이야기했다.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전율이 아마도 섬세한 시인에게는 잔인할 만큼의 아픔으로 다가온 걸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의 노래는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하는 노래인데, 목련꽃이 핀 세상은 정말 아련한 그리움과 새 생명의 신비를 떠오르게 한다. 이런 때 우리는 부활 시기를
최근 (Fear: A Cultural History)라는 아주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20세기 영국과 미국 사회를 지배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는데, 두려움은 그 사회구조를 반영하며, 또 사회구조는 사람들이 가지는 두려움을 반영하며 형성되어 간다는 논지였다. 그 중 내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죽음과 늙는 것에 관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