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늦었을지 모르지만, 생태적 회심의 문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무단 투기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수산물을 많이 먹는 한국 사람들은 심란하다.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잠 못 이루는 한여름을 보내면서, 앞으로는 더욱더 더위가 심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영구동토층에서 4만 년 전에 잠들었던 선충이 꿈틀대기 시작했다는 뉴스에 섬찟하기도 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지구가 망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 지구가 망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대단한 착각이다. 지구는 끄떡없다. 망하는 건 인간과 현존하는 상당수
(편집자 주 : 이 글에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유토피아’20세기에 유행했다가 지금은 뜸해진 단어이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처음 ‘유토피아’의 개념이 제시되었지만, 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 이후 일반적으로 널리 쓰였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로 ‘없다’라는 의미의 ‘ou’와 장소를 뜻하는 ‘topos’ 가 합쳐진 단어다. 한마디로 ‘어디에도 없는 곳’을 의미한다.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이며 평화로운 사회를 말하는 유토피아는 근본적으로 ‘없는 곳’이며 콘크리트와는 더더욱 어울릴 수 없는 단어이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 고명재의 산문이다.올해 읽은 산문 중 가장 아름답고 깊이 있는 문장들 때문에 조금씩 아껴 읽게 되는 책이었다. 실제로 기도하듯 매일 아주 조금씩 읽었다. 밤에 잠들기 전에 한두 챕터씩 읽으면서 여기 쓰인 문장처럼 꿈속에서만이라도 가 닿지 못한 세계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잠들었다.그곳은 주변 어른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어린 시인이 자란 사랑의 품속 같은 곳이었다. 이제는 다시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자의 박탈감, 각박하고 무서워지는 세상의 어둠에서 탈출해 작은 빛으로 나
유다와 관련한 몇 가지 의문점들유아세례를 받고 한참 지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첫영성체 교리를 듣는데, 첫 시간에 인간의 원죄와 대속을 위한 예수의 십자가 이야기가 나온다. 인과론적으로 보면 유다의 배신이 있었기에 예수가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다. 교리상으로 유다를 배신자이며 나쁜 놈으로 배워 그런가 싶었지만, 세월이 지나 머리가 굵어지면서 유다를 정말 매도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워졌다. 언젠가 유튜브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김어준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그가 유다는 예정설에 따르면 자기 역할을 다한 것일 수
어떻게 ‘남성의 자리’를 다시 찾을 것인가?인천에서 ‘삶이 보이는 창’이라는 주점을 운영하며 노동자와 함께하기도 했던 예수회 김정대 신부는 개인 체험에서 ‘남성성’을 성찰하기 시작했다. 주로 노동 문제와 사회정의 문제에 헌신했던 한 사제는 어떠한 연유에서 남성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왜 남자들은 기를 쓰고 불행하게 살까?"라는 제목의 책에서 남성에 관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살펴봤다.이 책은 팬데믹이 절정이었던 2021, 2022년 2년간 에 ‘남성의 자리 다시 찾기’로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출간됐다. 저자가
영화 ‘수라’를 만났다. 제20회 국제 환경영화제에서. 황윤 감독과 갯벌 지킴이들의 삶을 보면서 함께 눈물이 났고 화도 났다. 동시에 부끄러움과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누군가 끊어 놓은 생명 에너지를 맨몸으로 부활시키려는 그들의 노력에 감동과 미안함이 뒤섞여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군산에 있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는 전라북도 군산시와 김제시, 부안군을 이어 주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다. 사업 자체는 전라북도 옥구군 옥서면을 중심으로 한 금강, 만경강, 동진강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했다. 한낮의 전주는 미지근한 바람이 불었고 종종 더워서 옷소매를 걷어야 했다. 꽃들은 졌지만 여전히 바람이 불면 어딘가에서는 꽃향기가 났다. 코끝에 닿는 새침한 바람을 영원히 잡아 두고 싶었다. 바람이 헤집어 놓은 나의 설렘을. 그것은 순전히 너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배낭을 메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낯설지만 동시에 낯설지 않은 삶에 대해 생각한다. 굳이 이곳 전주까지 와서 영화를 보는 이유가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영화를 본다는 건 적어도 내게는 나의 좁고 작은
“너는 마흔네 살에 죽었다. 너무나 젊은 나이다. 그러나 네가 천 살을 살았다 해도 나는 똑같이 말했을 것이다”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는 에세이의 한 구절이다. 우리에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절망 그 자체이다. 슬픔은 오롯이 남아 있는 자들의 몫이고 이 슬픔은 꽤 오랜 시간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상실은 불현듯 찾아오고 우리는 다 나누지 못한 삶의 조각들을 서둘러 찾아보지만 이제 그(그녀)를 다시는 볼수 없다는, 영원히 만져볼 수 없다는 사실에 고통받는다. 이번 책 "상실 수업"은 읽는 동안 여러 가지 이야
이 책은 30년 전에 쓰인 책이다. 그러나 30년이 지나 읽어도 공감하는 데는 전혀 손색이 없다. 여전히 진행 중인 가부장의 사슬과 그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수십억의 여성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저자는 융 심리학을 기점으로 자기 발견의 여정을 말하고 있다. 저자 모린 머독은 무력한 어머니와 우상화된 아버지를 떠나 자신의 길을 찾는 여성들에게, 여전히 남성적 가치–성공, 성취감, 만족도 등-를 기준으로 삼아 자신의 여성성을 부정하는 수많은 여성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녀는 여성이 남성 영웅의
존중과 소외의 경계는 어디쯤일까?이 책의 저자는 메리 워싱턴 대학에서 언론학을 가르치며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하고 있는 수시마 수브라마니안(Sushma Subramanian)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별명이 터치-미-낫(touch-me-not)이었을 정도로 신체 접촉에 심한 거부감을 느꼈으나, 이 책을 집필하며 자신에게도 타인의 손길이 절실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터치하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는가?아마도 섹슈얼한 이미지부터 떠오르는 게 대다수의 사람일 것이다. 터치는 단순히 그런 의미만을 담고 있지 않다. 터치는 ‘촉각’을
이 책은 충격과 경이로움 그 자체다. 처음 제목만으로는 과학이나 생물학 서적일까 생각했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보고는 철학과 인문학 서적을 연상했고, 마지막에 가서는 소설적 문체까지 아우르는, 한마디로 경계가 없는 책이라는 말이 적합할지 모르겠다.저자 룰루 밀러는 미국 공용 라디오 방송국(NPR)에서 15년 넘게 일하고 있는 과학 전문기자다.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Peabody Awards)을 받은 이력이 있고 자신의 전기이자 회고록인 논픽션 데뷔작이 바로 이
여기 독특한 이모가 있다. 엄마는 해줄 수 없는 말을 과감하게 툭툭 던지는 이모. 그래서 때론 아픈 진실을 무책임하게 드러내주는 이모. 하지만 우리에게 모두가 꼭 한 방향으로만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따뜻하게 건네주는 이모.이모는 그런 어른이다. 세상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엄마보다는 더 무심한 듯, 하지만 엄마 못지않은 애정으로 우리를 바라봐 주고 다정한 말을 건네주는 이모.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엄마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우리 삶에 따뜻하게 개입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이모가 아닐까.소복이 이모는 그렇게 탄생했다.
우리의 여름은 빠르게 소멸했다. 머리 위를 타오르듯 뜨겁게 비추던 태양도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여벌 옷을 더 끼어 입어야 하는 스산한 계절이 왔다. 단풍은 아마도 이번 주쯤이면 절정을 이루고 그 마저도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런 계절에는 정치나 과학, 경제 서적보다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어도 무방할 그저 익명의 누군가의 소박한 삶을 엿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당신은 어떻게 살아왔나요.... 어떤 여름을 보냈고 지금 어떤 가을을 맞고 있나요'라고 작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된다.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이 책은 여성의 주체적 종속에 대한 저자 캐롤라인 냅 자신의 혼란과 분노를 넘어선 성찰의 기록이다. 그녀는 자신의 내적 허기를 개인적 사건을 통한 성찰과 내적 기록으로 면밀하게 써내려갔다. 이 책은 여성들이 어린 시절부터 강요받는 여성다움에 대한 암묵적 강요와 사회적 시선에 대해 한 개인의 내면이 붕괴되는 뼈아픈 기록이자 신자유주의 시대에 나타나는 여성들의 다양한 문제를 숙고해 볼 수 있는 사회적 성찰의 텍스트로 삼아야 할 소중한 기록이다.저자는 1959년 저명한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화가이자 주부였던 어머니 사이에 쌍둥이로 태어났다
성서에 ‘코헬렛서’가 있다. 이 책은 21세기 가톹릭교회에서 가장 주목하는 영성가 조앤 치티스터 수녀가 코헬렛서를 읽으며 발견한 일종의 지혜 지침서다.베네딕도회 수녀로서, 40년간 평화, 인권, 여성, 교회 쇄신을 주제로 다룬 세계적인 강연자이자 유명한 영성 작가인 그녀는 이 책에서 우리가 놓치지 않고 꼭 붙잡아야 할 인생의 16가지 순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치티스터 수녀는 어릴 때부터 성경을 접하며 자랐고 자신의 삶이 각각 분리된 순간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모든 순간이 연결되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한 편의 드라마인 것을 깨달았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과 ‘시설’이 얼마나 밀접한가에 대해, 몇 년 전 인권교육 활동가 동료 하나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흔히 산부인과나 조산원에서 태어나 산후조리원을 거쳐 어린이집, 유치원, 각급학교와 온갖 일터를 통과하고 장례식장에서 죽는데, 사람이 거쳐 가는 그 공간들이 거주/수용시설과 얼마나 다른가, 그가 했던 질문이 책 읽는 내내 떠올랐다.통제 가능한 몸, 관리하기 편한 존재김순남이 언급한 대로 시설화가 ‘시설 내부에서 작동하는 규율체계일 뿐만 아니라 사회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인간됨의 조건을 구성하는 과정’(3
물 안에서 숨 쉬던 사람. 생을 혐오할 조건을 타고났으나, 이제 자신의 힘으로 동족을 만나 부족을 이루고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 삶을 통해 삶을 이겨낸 사람. 저자 리디아 유크나비치.자신의 회고록 "숨을 참던 나날"은 펜 센터 USA상 크리에이티브 논픽션 부분에서 최종 후보에 올랐고, PNBA상과 오리건 도서상의 리더스 초이스 부문에서 수상했다. 또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직접 감독을 맡아 영화화 작업 중이다.리디아 유크나비치.그녀는 수영 선수다. 어렸을 적부터 물속에서 놀며 청소년기까지 오로지 수영밖에 모르며 살아온 여자였다.
여기 전쟁에 관한 목소리들이 있다. 전쟁은 언제나 남성의 목소리, 영웅의 목소리만을 외쳤지만 오랜 세월 숨겨져 오고 감추어져 있던 여성의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194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를 만들었다. 일명 목소리 소설(Novel of Voices)로 작가 자신은 ‘소설-코러스’라고 부른다. 다년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모은 이야기를 일반 논픽션의 형식으로 썼지만 소설처럼 읽히는 강력한 매력이 있는 다큐멘터리 산문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우리는 고통스러운 감정이 우리를 짓누를 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른다.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처럼 간단하지도 않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늘 일상 안에서 지속되는 감정, 예를 들면, 기쁨과 슬픔, 고통과 외로움처럼 우리 삶에 호흡처럼 붙어 있는 감정에 대해 왜 우리는 서로 배우거나 알려주지 않을까. 해서 매번 고통스러운 감정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좌절한다. 고통스러운 감정이 반복되는 이유는 우리가 감정을 처리할 더 나은 방법을 몰라서이거나 다른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상황이 더 악
이 책은 내게 우연한 기회로 찾아왔다.“전염의 시대”라는 제목의 단어부터 최근 상황을 겪으며 생긴 고민에 실마리를 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감염’의 급속한 세계화 그리고 무너진 일상.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당황스럽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 이 책은 어떤 빛을 비춰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은, 결국 이는 나만의 고민이나 개인 삶의 문제가 아니며, 시간적으로도 지금만의 사건이 아니라는 확인이었다.작가 파울로 조르다노. 그는 코로나19로 극심한 피해를 본 이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