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시청률을 갱신하며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SKY 캐슬'은 자녀가 최고 학벌을 획득해 부모가 누리고 있는 상류 계층의 기반을 세습하는 일에 올인하는 이야기다. 오직 이 목적에 부부와 가족의 삶이 존재하고, 이 목적을 위해 부모는 학대 수준의 훈육을 자행한다. 다양해진 대학입시 전형을 멘토링 하고, 고교 내신 관리를 담당하는 입시 전문가 그룹을 말 그대로 수십 억을 들여 고용한다. 자녀가 이에 부합하지 못하면 정서적, 심리적으로 학대하고 물리적 폭력까지 마다 않는다. 그러는 가운데 청소년들은 병을 앓고, 가족은
‘그래픽노블'(graphicnovel)은 ‘그림'(graphic)과 ‘소설'(novel)의 합성어로, 만화처럼 이미지와 글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야기 구조가 일반 만화보다는 소설처럼 복잡한 장르를 말한다. 영화로도 제작된 ‘엑스맨’, ‘아이언맨’ 시리즈 등 마블 코믹스사의 그래픽노블이 대표적이다. 영미권에서 가장 활발히 창작되며 아직 국내에서는 창작보다는 번역작을 더 많이 만나 볼 수 있다. 밀리언셀러인 "Why"나 "마법천자문" 등 어린이 학습만화를 ‘에듀테인먼트'(ed
영화 '살아남은 아이'의 초반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2008)를 상기시킨다. 준페이라는 청년은 10년 전 여름, 물에 빠진 소년 요시오를 구하고 자신은 목숨을 잃고 만다. 가족들은 10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준페이의 기일에 모여 그를 기린다. 이 자리에는 요시오 역시 줄곧 초청된다. 10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요시오는 그만 참석해도 되지 않느냐는 준페이 동생의 질문에 어머니는 대답한다. “증오할 상대가 없는 만큼 괴로움은 더한 거야. 그러니 그 아이한테 1년에 한 번쯤 고통을
'첫사랑'은 제목처럼 작고, 얇고, 예쁜 그림책이다. 슬로베니아 작가가 글과 그림을 그렸고 ‘움직씨’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며 번역, 출간했다.그림책의 주인공은 여섯 살 남자아이다. 엄마와 시골 할머니 댁을 떠나 도시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게 된 아이는 시골을 그리워하고 친구를 사귀지도 못한다. 그러다 드레이크라는 남자아이와 단짝이 된다. 감기에 걸린 주인공이 일주일 만에 등원하고, 반가운 드레이크가 주인공에게 뽀뽀하자 선생님은 “그 애는 여자아이가 아니”라며 나무라고, 계속 둘을 떼어 놓는다. 주
성장소설, 성장서사라는 용어가 있듯 10대의 성장담은 오랫동안 문학과 영화에서 종종 만나왔던 이야기다. 이야기의 최종 목적지는 늘 ‘성장’이라는 낯익은 장소인데도 성장담이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는 뭘까. 우선 성장 과정에 있는 젊은이에게도, 그 과정을 지나온 나이든 이들에게도 각각 다른 빛깔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신체 나이나 인격 성숙의 정도에 상관없이 누구나 성장 과정 중에 있기 때문 아닐까. 늘 모자라고, 부딪히고, 무너지고, 죄와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다짐하면서.... 매일의 일
자전거가 생겼어.활짝 펼친 까치의 날개 무늬처럼하얀 내 자전거는 이름이 눈사람이야. 앞바퀴 뒷바퀴 동그라미 두 개를 달고내 눈사람은 나와 함께 잘도 달리지.동글동글 봄에는 꽃비를 맞고동글동글 가을에는 낙엽을 밟고빙글빙글 바람을 일으켜 가며빙글빙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햇살 아래서도 녹아 사라지지 않는눈사람 자전거는 눈사람이 내게 준 씨앗,눈사람 자전거는 눈사람이 내게 준 편지. 첫눈이 와 내 어깨에 닿을 때까지나는 눈사람과 함께 달린다. - 정유경, '눈사람과 함께 달린다' 전문("전봇대는 혼자다" 중) 자전거를
강아지 별어미가 물려 주는젖꼭지를강아지들이 빨아 댑니다.쭉, 쭉,기운찬 힘을 쓰자먼 하늘의 빛살들이 빨려 오더니뒤이어환한 빛 덩이들이 이끌려 옵니다.그리하여강아지들 하나하나의별이 됩니다.- 성명진, “걱정 없다 상우”(문학동네, 2016) 중.강아지들의 첫 자리다. 갓 태어나 엄마 젖을 빤다. 그런데 엄마 젖을 쭉쭉 빠는 기운찬 힘에 먼 하늘의 빛살과 빛 덩이까지 이끌려온다. 살겠다고 젖을 빠는 힘이 별을 불러온다. 생명이 지닌 힘이다. 생명의 힘이 저 먼 별빛을 끌어당긴다. 그 별 하나하나는 소중한 생명 하나하나를 지켜 주겠지.
테마파크는 ‘동화’가 현실세계에 가장 화려하고 정밀하게 구현된 공간이다. 오직 꿈과 희망과 풍요만이 형형색색의 헬륨 풍선마냥 둥둥 떠다니는 곳. 전 세계 테마파크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광대한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디즈니 월드는 그야말로 ‘매직 킹덤’이다.‘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된 디즈니 월드 건설 계획이자 최근 플로리다주 홈리스 보조금 지원 정책이기도 하다.(송경원, ‘숀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현실과 동화 사이에 숨은 것들’, 2018년 2월 28일자 참조)
패딩턴은 영국 작가 마이클 본드가 1958년 첫 권을 발표한 동화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피터 래빗이나 곰돌이 푸우만큼 유명한 곰 캐릭터인데 최근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사랑받고 있다.패딩턴 동화와 영화는 꽤 다르다. 동화가 원작인 영화는 원작과 거의 비슷하고 에피소드나 설정 등 작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창작된 지 60년이 되어 가는 지금, 더욱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오늘날의 패딩턴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 냈다.패딩턴은 어느 날 갑자기 남미 페루에서 런던으로 건너와 새로운 가족을 찾아야 할 운명
머리카락이나 손톱이 나의 분신으로 변하는 옛이야기 모티프는 오늘날 동화나 동시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는 상상력이다. 옛이야기에서는 대개 ‘진짜 나’와 ‘가짜 나’를 구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진짜 나’는, 언뜻 보면 더 진짜 같은 ‘가짜 나’가 실은 가짜이고 자신이 진짜임을 밝히는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오늘날 어린이청소년문학 작품에서도 나의 분신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사건은 그리 달갑지 않은, 골치 아픈 일이 된다. SF의 과학적 상상력에서는 복제인간을 분신으로 볼 수 있을 텐데 이 경우 유일무이한 ‘나’라는 인간 존재
늑대가 소녀를 잡아먹는 "빨간 모자"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해서 오늘날 어린이에게 들려 주어야 할까. 빨간 모자는 엄마 말을 어기고 숲에서 놀다 늑대에게 잡아 먹히고, 사냥꾼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난 뒤 이제 엄마 말을 잘 듣겠다고 결심한다. 어른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일까."옛이야기의 발견"(김환희, 우리교육, 2007)에는 "빨간 모자"에 대한 여러 학자의 해석이 간명하게 정리되어 있다. 먼저 베델하임을 비롯한 정신분석학자들은 "빨간 모자"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초자아(super ego)인
"100만 번 산 고양이"는 제목 한 번쯤 들어 보았을 법한 베스트셀러 그림책이다. 어린이보다는 어른이 좋아하는 그림책이기도 하다.고양이 목숨은 여러 개라는 말처럼 이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 백만 명의 사람들이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고양이가 죽었을 때 슬프게 운다. 하지만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운 적이 없다.고양이의 주인은 임금님, 뱃사공, 서커스단 마술사, 도둑, 할머니, 어린 여자아이였다. 임금님‘의’ 어린 여자아이‘의’ 고양이였다. 즉 그들‘의’ 소유였다. 고양이는 임금님, 바다, 서커스를 싫어했지만
소녀들을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에도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백지장처럼 보던 시절이 오히려 낫다 싶을 정도다. 오늘날 소녀들이 대중매체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소비되는 방식은 또래에게 극악한 폭력을 행사하는 악마이거나, 제 몸을 내팽개치며 삶을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성매매 여성이거나, 결코 남성이 위압당하지 않고 감당할 만큼의 성적 매력으로 ‘삼촌’ 팬들에게 환영받는 연예인의 모습이다. 불특정 다수의 소녀들에게 향하는 롤리타 콤플렉스를 대중매체와 일상에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문화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이런
나는 ‘착한 어린이’였다. 400명이 넘는 한 학년 아이 중 ‘착한 어린이표’를 가장 많이 받은 아이였다. ‘착한 어린이표’가 여러 개 모이면 ‘선행’이라고 쓰인 동전 모양 패치를 주고 이름표에 달게 했는데 내 이름표에는 선행장이 세 개나 달려 있었다. 금메달까지 땄으니 받을 상을 다 받은 셈이었다.내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 걸 알면서도 나는 깊은 수치심을 느낀다. ‘착한 어린이표’로 어린이를 억압하고 통제한 어른과 그들의 세계에 분노가 인다. ‘착한 어린이표’에서 ‘착함’은 규율이지 윤리나 도덕은 아니었을 테니까. 내가 규율에서
“남성은 누드에 여성은 무드에 약하다.” “남성은 친밀감이나 사랑의 감정 없이도 스킨십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여성은 대화나 분위기 등 감정을 주고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친밀감이 생긴 후 스킨십 욕구가 생긴다.”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성 친구와 단둘이 집에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 친구들끼리 여행 가지 않는다.”성차별적인 이러한 문구들은 놀
요즘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장난감으로 '피젯 스피너'(Fidget Spinner)가 있다. 세 개의 날개를 가진 작은 바람개비 모양에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로 손가락 끝에 올려 놓고 균형을 잡아 팽이처럼 돌리는 장난감이다. 1997년 미국에서 특허를 받았으며 2017년에는 사무실에서 유행할 키덜트 장난감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팽이처럼 손가락
한 소녀의 죽음을 뒤쫓는 의사가 있다. 어느 밤 의사 제니는 진료시간이 끝난 뒤 울리는 벨에 응답하지 않았다. 의사로서의 정확한 직무와 책임을 인턴에게 가르치던 중이었고 급한 환자라면 벨을 두 번 울릴 거라 예상했지만 벨은 한 번 더 울리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 벨은 위기에 빠진 소녀가 도움을 요청하던 벨이었다. 제니는 그때 벨에 응답했다면 소녀가 죽지
“달빛 아래에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 영화 '문라이트'의 원작 제목이다. 시적인 문장이지만 영화가 그리는 현실은 마냥 아름답지 않다. 고통과 슬픔을 삼키며 달빛 아래 한 줄씩 새겨 간 시 같다. 가난한, 흑인, 게이, 소년. 주인공 샤이론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다. 계층, 인종,
요즘 소녀들은 어떤 사랑을 꿈꿀까. 백마를 타고, 유리 구두를 신겨 주는 왕자와의 운명적 만남과 행복한 결혼을 꿈꾸지는 않을 듯하다. 디즈니의 1세대 공주인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그걸 아는 디즈니는 이미 20년 전부터 '뮬란', '라푼젤, '겨울왕국'에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새로운 공주상을 만들어 냈다.
생의 한 순간에 머무르고 싶은 적이 있던가. 지금 이 시간이 무한히 계속되어 내가 느끼는 이 충만한 행복감을 영원히 누리고만 싶은.... 현재를 부여잡고 싶은 마음은 공간의 상상력으로 확장되어 지금 나를 둘러싼 공기는 바로 눈앞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 단절된 듯한 느낌들.... 팀 버튼의 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1943년 9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