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에는 첫눈이 내리고, 이제 겨울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소설가 서영은이 쓴 산문에 실린 눈에 관한 이야기도 따라와 앉는다. 묵은 선술집에서 사내 몇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자리가 파장이 날 무렵에 한 사내가 바깥으로 난 창을 내다보더니 이내 한 마디 한다. “야, 눈이 오네.” 일어서려던 엉덩이를 다시 붙이고 흰 눈빛에 젖어 다시 소주를
독일신학자 베르너 라우비가 쓰고, 안네게르트 푹스후버가 그림을 그린 (북극곰, 2012)은 300쪽 안에 창세기부터 바오로 서간까지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통독용 성경이다. 늘 듣는 성경 내용이지만, 전후 맥락이 언제나 헛갈리는 게 또한 성경이다. 이 책은 성경의 드라마를 이야기로 전개하면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우리 자신을 성경 속 등장
요즘은 한국사회를 ‘헬조선’이라고 한다. 청년층이 우리나라를 자조하며 일컫는 말이다. 지옥(Hell)과 조선(朝鮮)을 합성한 신조어로 말 그대로 ‘지옥 같은 대한민국’이란 뜻이다. 이 청년들은 무급 인턴, 비정규직, 취업난 등을 경험하면서, 사회에선 청년들을 88만원세대부터 시작해 민달팽이 세대, 삼포세대라고도 불린다. 이런 시대에 희망의 출구가 어디에 있
나이 들면서 읽는 게 이렇게 힘들어서야,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모니터는 자체발광을 해서인지 좀 나은 편이지만, 무엇인가 읽고 나서는 늘 눈을 씀벅이곤 합니다. 예전에 나이 지긋한 늙은이가 되면 뭘 할까, 생각해 본 적이 있지요. 컴컴한 헌책방 서가 사이에서 무릎담요를 덮고 스탠드 불빛에 기대어 다시 고전을 읽는 모습을 상상했었죠. 아득하고 아늑한 정경
조수미가 리메이크해서 다시 한번 읊조리는 노래가 있다. ‘사랑, 그 쓸쓸함에 관하여’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로 시작하는 그 노래다.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야 탓할 수 없지만, 문제는 어긋난 사랑이다. 어긋난 사랑은
라는 책이 번역되었다. 예전에 한국에 와서 “예수는 아나키스트였다.”고 말해 깊은 감흥을 일으켰던 마크 H. 엘스가 지은 책이다. 예수는 권력화된 모든 정치세력과 종교세력에 대한 안티anti였다는 것이다. 결국 그래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내가 예수였다는 것인데, 민들레의료생협 이사장이기도 한 조세종 디오니시오
강정마을, 순화동과 광화문에 가면 젊은 사제들과 더불어 가장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 가운데 늘 수녀들이 있다. 영적성장과 사회적 실천이 둘이 아니라는 말을 새기며 때로는 모성적인 품으로 때로는 다부진 여성으로 현장을 지키는 분들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자주 마주치는 얼굴 가운데 한 분이 서울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소희숙 스텔라 수녀다. 이 수녀에게
“삶의 흔적은 대지 위에 남는다.” 건축가 이일훈 선생의 는 책에 나오는 글귀다. 십수 년 전에 귀농을 꿈꾸면서 노다지 땅을 물색하고 전국 사방각지를 떠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전남 영광에서 강원도 홍천까지. 결국 경북 상주에 잠시 머물다 안착한 곳이 전라도 무주였다. 무주 산골짜기에 터 잡고 살았던 6년, 200평 대지에 건평 25
머리끝이 희끗한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만났다. 오빠 전태일이 분신했던 1970년, 그녀의 나이는 16세. 봉제공장 시다로 일하며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더불어 노동운동으로 청춘을 보낸 여인이다. 1989년 노동운동의 국제연대를 위해 영국유학을 떠나 워릭대학교에서 노동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그의 논문은
“생태적 불의와 사회적 불의는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자연보호, 가난한 이들에 대한 정의, 사회참여와 내적 평화는 불가분의 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환경회칙 10항에 나오는 이 구절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이 나의 영신생활과 관련이 있고, 세상이 정의롭지 못한 것은
한국교회는 전례력에 따라서 매년 한 차례 가을초입에 ‘순교자 성월’을 기념하면서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삶을 우리시대에 어떻게 계승할 수 있을지 묻고 있다. 순교란 신앙에 따른 결정적 죽음이라는 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연상시키는데, 한편에선 우리 교회가 ‘순교’를 너무 종교적 의미에서만 다루고 있는 게 아니냐는 반문도 있다. 그래서 1801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여당은 국정화 반대자들을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다”라며 싸잡아 비난한다. 한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90퍼센트가 좌파”라고 비난했던 역사학자들과 많은 시민단체, 야당은 정부가 내놓은 국정교과서를 ‘친일 독재 교과서’가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공식 역사서술의 주도권을 정부와 시민사회가 서로 갖겠다고 윽박지르고 있
프란치스코 교종은 방미 중에 9월 24일 미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미 의회는 미국의 얼굴로서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국민을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종은 모세가 유대인을 자유의 땅으로 인도했듯이 “미 의회는 공정한 입법으로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언론들이 이날 “교종이 미국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고 보도할 만큼 교종은 의회 연설에
신도시 개발로 한국교회 지형이 약간 바뀌고 있다. 본래 한국교회는 부동의 대형교구 위치를 놓치지 않는 서울‘대’교구, 그리고 권역별로 나뉜 대구대교구와 광주대교구가 다음 순위이며, ‘그 밖의’ 교구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수도권의 도시 확장과 신도시 개발로 거대교구 자리를 넘보는 수원교구가 부상하고 있다. 혹자에 따르면 수원교구 신도시 지역의 모 성당
‘참회의 정신’을 가장 강조해 온 가톨릭교회에서 한국교회처럼 회개하지 않는 교회도 드물다. 나치에 대한 독일의 철저한 응징과 반성에 비추어 침략전쟁에 대한 일본의 후안무치를 비난하지만 한국만큼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나라도, 교회도 드물다. 2010년 8월 일본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이케나가 준 대주교는 ‘평화주간’ 담화문에서 한일합병 100년을 맞이해 일제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 16,18-19) 복음서에 쓰여진 이 놀라운 구절은 성 베드로 대성전의 천장에 라틴어로 새겨져 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에서는 베드로를 ‘초대 교황’이라 불렀다. 교황이란 ‘로마의 주교’를 지칭하는 말인데, 바오로와 다르게 베드로는 디아스포라 ‘
강우일 주교(제주교구)가 지난 8월 2일 열린 2015 포르치운쿨라 축제 미사 강론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대법원의 부당한 판결에 항의하며 사법부 재판관들이 불의와 불공정을 바로잡아 줄 것을 요청했다.이 행사는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이 모이는 자리로 경남 산청에 있는 성심원에서 열렸다. 강 주교는 7월17일 제헌절이 국경일에서 빠지면서 헌법의 중요성을 국민
작은 형제회 한국관구에서 지난 8월 1일부터 1박 2일 동안 경남 산청 성심원에서 포르티운쿨라 축제를 열었다. 이번 축제는 ‘회상에서 회개로’라는 주제로 열렸다. 첫날 오후 8시에 시작된 촛불기도회 진행을 맡은 신성길 수사는 “이 밤에 정의롭고 형제적인 사회건설을 위한 우리의 책무에 소홀했음을 참회하고 우리 사회의 희생양이 된 이들과 연대하며 생명평화를 위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6월 18일 교황회칙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를 발표해, 전 지구적 차원의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생태적 회심을 요청했다. 이 회칙은 통상 ‘환경회칙’이라고 불리는데, 지난 7월 21일 바티칸에서 열린 ‘현대 노예제와 기후변화’ 워크숍에서, 이 회칙은 ‘환경회칙’이라기보다 ‘사회회칙’이라고 했다.
지금은 글을 쓸 때 언제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이라고 붙이고 있지만, 예전에는 ‘농부, 평신도신학자’ 이렇게 꼬리를 달았던 적이 있다. 언감생심, 입으로 노래하던 농사를 짓기 시작한 1999년부터다. 30대 후반의 아직 청년이 티가 무덕무덕 오르던 시절이었다.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뭘 모르고 붙인 ‘업’(業)이 농부였다. 농사는 관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