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의 서울, 식솔 벌어 먹이기가 벅찼던 가장이 방에서 목을 맸다. 아이들 엄마는 그 비겁한 가장의 시체를 두들겨 팼다. 1990년대의 서울, 가출한 아내에 대해 분노한 가장은 아이를 데리고 다리에 나가 강물에 떠밀어 던졌다.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죽지 않겠다고 빌던 아이는, 경찰이 아버지를 끌고 가자, 아버지가 빨리 집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 양애경, 시 ‘계백의 아내’ 중, 1997.2019년 11월 인천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4명(어머니, 아들, 딸, 딸의 친구)이 한꺼번에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 1. 일본에서 초등학교 영어교사로 근무하던 뉴질랜드인 켈리 세비지(Kelly Savage, 27)는 우울증으로 인한 어려움 때문에 2017년 5월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입원 이후 켈리는 10일간 격리․강박을 경험하였고, 심폐정지로 사망하였다. 가족이 심장전문의에게 사망원인을 문의한 결과, 장기간의 움직임 제한으로 인한 혈전 형성이 원인이라는 통보를 받았다.사건 2. 2016년 4월 한국의 20대 남성인 이준호(가명) 씨는 알코올의존증으로 영등포 소재 A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그러나 입원 이후 35시간 동안 격리실에
- 당사자의 경험적 지식이 주도하는 목소리 듣기 운동(hearing voice movement)에 대하여“저에게 정말로 들리는 목소리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죠? 그렇다면 선생님은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신은 왜 믿으시나요?” 1987년 네덜란드의 정신과 환자 패치 하허(Patsy Hage)는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주치의였던 정신과 의사 마리위스 로메(Marius Romme)는 그 목소리들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답답함을 느꼈던 하허는 진료실 벽에 걸린 십자가를 보고 저 말을 한 것
“나를 정신병원에 가둘 때, 사람들에게 말했어요. 저는 여기 있고 싶지 않아요. 그들은 괜찮을 거라고 말했어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과 그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죠.”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주제로 한 영화 ‘55 Steps’(2017)의 주인공 엘레노어 리즈가 자신을 찾아온 인권변호사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온 대사 중 일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목소리’에 대해선 자연스레 주어진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 대사처럼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 속에서 정신장애인의 목소리는 배제될 위험이 농후하다. 미쳤
‘시한폭탄, 격리조치, 위험, 무서움, 공포.’ 최근에 보도된 정신장애인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일부 단어들이다. 정신장애인의 낙인과 편견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혐오가 되고, 차별과 배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편견과 달리 정신장애인은 범죄의 피의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될 확률이 비장애인에 비해 약 4-6배 높다는 연구도 있다.(de Vries et al., 2018; 이 연구자들은 정신장애인은 통상적으로 주거 부재 및 실업과 같은 열악한 사회적 환경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범죄자와 접촉할 가능
정신건강 및 정신장애인 영역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론을 만들고, 실천적 성과를 성취한 수많은 ‘전문가’의 역사는 공식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다소 비공식적이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투쟁을 지속해 온 당사자운동의 역사 또한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1970년대부터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몇백 년 전부터 법률, 치료, 서비스, 공공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한 당사자 주도 투쟁은 전개되었다. 예를 들어 1620년 악명이 높았던 영국 베슬렘 병원의 환자들은 힘을 모아 ‘베슬렘 병원의 가난하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중 일부다. 이처럼 ‘사랑’이라는 가치는 중요한 삶의 목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일까?2년 넘게 남자친구랑 사귀었는데, 처음 사귈 때 부모님한테 얘기했더니 “우리 인연을 끊자, 너 계속 연애를 하려면.” (상대방이 비장애인인데도) 그 이유가 “너는 직업재활기관에서 10만 원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지 않냐. 그 10만 원
‘관리’의 객체가 아닌 ‘권리’의 주체로서의 정신장애인을 위하여1960년대 시작된 탈시설화는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나진 않았다. 60년대에도 프랑스는 기존 시설의 과밀을 해소하기 위해 정신병원을 더 구축할 계획이었고, 이탈리아도 70년대까지 정신병원 20곳이 각각 1000명이 넘는 환자를 수용하고 있었다. 스페인은 오히려 50년대 54개이던 시설 수가 1981년 109개로 2배가 되었으며, 사민주의 정권이었던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도 정신병원 입원자수는 70년대 내내 증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모든 국가는 탈시설화하였다
A씨는 50대 초반이며, 독립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17년 전에 정신과적 어려움으로 보호의무자에 의해 첫 입원을 하였지만 그 이후 한 번도 입원하지 않고 일상을 지내왔다. 그러던 중 작년 말 가족과 집주인에 의해 위기상황(집의 청결상태, 건강상태 등)이 포착되었다. 이들은 동주민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A씨의 집을 방문하여 면담한 결과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결국 가족들은 사설 응급환자이송단에 의뢰하였고, A씨는 집에서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B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이 되었다.이는 최근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에
‘정신건강’ 혹은 ‘정신질환’을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치료’의 이미지가 따라온다. 치료와 관련된 부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치료 후의 일상으로 복귀한 정신장애인의 ‘평범한 삶’에 대해선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다. 자신이 거주하고 싶은 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취미와 여가를 즐기고, 친구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원하는 직장을 얻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 이는 대한민국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이라면 그 누구라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기본 ‘권리
최근에 개봉한 ‘곤지암’이라는 영화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다. 이런 영화가 현재에도 상영되는 이유는 아마도 여전히 정신장애인은 ‘위험’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셸 푸코는 저서 "광기의 역사"에서 18세기 후반 광인들을 수용시설로 격리시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용을 통해 배제시키려고 했던 것이 환상적 양상을 띠고 다시 대중에게 돌아왔다고 언급한다. 21세기 현재 한국에서 ‘곤지암’은 18세기 정신병원 ‘비세트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의 이미지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정신장애인
미국의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27명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건강이 위험한 상태라고 진단하며, 2017년 10월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트럼프의 정신건강이 어떠한 상황인지를 떠나서 이는 소위 '골드워터 룰'(goldwater rule)이라 불리는 미국정신의학회(APA) 윤리강령에 어긋나는 행위다. 골드워터 룰은 “정신과 의사가 직접 대면 검사하지 않았고 합당한 허가를 받지 않았다면, 특정 공인의 정신 건강에 관해 전문적 의견을 제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을 의미한다.정신건강 전문가들
정상과 비정상으로 이분화된 구도를 벗어나 존재의 다양성으로슬픔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귀중한 감정 중 하나이고, 우리는 살면서 슬픔을 피할 수는 없다. 마음이 아플 때 충분히 울어 주는 것이 슬픔의 고귀한 가치며, 그로 인해 다시 기쁨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론 슬픔이 과도해지면 비정상의 규범에 들어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복합적 슬픔장애'(complicated grief disorder)와 ‘지속적인 복합적 사별장애'(complex bereavement disorder)’는 너무 많이 슬퍼하는 사람을 비정상
정신장애인과 관련된 이탈리아와 일본 이야기“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기형도의 시 ‘정거장에서의 충고’ 중 일부다. 정신장애인의 억압된 일상은 현존하는 실제이지만,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신장애인의 삶과 관련하여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낸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이탈리아와 일본의 사례다. 이탈리아는 정신병원이 없는 국가로 유명하다. 이탈리아는 과연 어떻게 '모든 정신병원'을 '폐지'할 수 있었을까? 이탈리아도 20세기 후반 정신보건 개혁이 시행되기 전에는 우리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강해지고 있다. 그것은 무조건적 긍정성을 추구하는 사회, 반대로 말하면 일말의 부정도 허용치 않는 사회다. 다이어트는 기본이며, 요가부터 필라테스는 꾸준한 자기관리의 표상이 되었다. 백옥주사, 신데렐라 주사 등 각종 주사, 보톡스, 성형수술, 지방흡입은 옵션이다. 비단 신체건강에 대한 완벽함뿐 아니라 이제는 정신건강에 대한 완벽함도 추구한다. 철학자 한병철은 이러한 현상을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자기착취라고 설명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부정성이 배제되고 타자의 명령이 아닌, 자기 스스로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되고 시행된 지 20년이 흘렀다. 그렇다면 과거에 비해 정신장애인은 더 행복해졌을까? 과거나 현재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답은 단순하다.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정신장애인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TV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해 듣는 유일한 시간은 ‘범죄’와 관련된 사건이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혐오가 이슈였다가 순식간에 정신장애인 혐오로 전환되었으며, 2017년 3월 인천 여고생 사건은 ‘조현병’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만들어 버렸다. 뉴스를 접한 대중은
‘정신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무엇이 떠오르는가? 위험성? 통제불가? 무능? 너무 부정적인 이미지만 나열했는가? 그러나 아마도 이러한 이미지들이 떠올랐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사실 대다수는 정신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미지의 존재’에 대해 우리는 외부에서 형성된 프레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예컨대 뉴스, 신문기사 등의 언론 혹은 영화, 드라마 등의 미디어로 만들어진 어떤 가공의 이미지들 말이다. 이처럼 정신장애인의 부정적 편견은 우리가 직접 겪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