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을 어슬렁거리다 손에 걸린 책 한 권이 있다. 제목이 별나서다. "제 정신으로 읽는 예수" (김경윤, 삶창, 2016)이다. 아마 이 책의 핵심은 예수를 ‘그리스도’가 아니라 ‘친구’로 불러야 옳다는 제안일 것이다. 예수를 ‘친구’로 부르면 “나자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신앙공동체”인 ‘그리스도교’라는 말 자체도 바뀌어야 하니, 당혹스
얼마 전 국민의당 안철수가 “저는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에 모두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문재인을 비판하며 “정치인은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헌법적 절차 안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그런 역할을 할 사람이 광장의 한쪽에 서 있으면 그런 역할을 못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 것이다. 광장은 시민에게 맡기고, 정치인은 국회로 가라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요즘은 줄여서 ‘박순실게이트’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동안 드러난 정황으로 봐서 그들은 국정농단 사태의 ‘공범’을 넘어서 사실상 ‘한 몸’이 되어 움직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빙의가 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두 인격의 합체가 역겨운 것은 그 행실과 의도가 추악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사유화를 넘어서 민중에 대한 멸시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채광석 시인을 생각하며성탄절에 만나는 예수는 놀랍게도 ‘아기’였다. 헤로데와 같은 폭군을 만나면 살해당할 수 있고, 그래서 객지로 부모의 품에 안겨 떠나야 했던 무력한 이주민의 아들이었다. 복음서에선 아예 아빠도 친아빠가 아니라고, 미혼모처럼 하느님 자비 안에서야 보호받을 수 있는 가련한 존재다. 그나마 후견인이 되어 주었던 요셉마저 일찍 사망하고 과부의
얼마 전 인터넷 전용선 와이파이 설치를 한 통신업체에 의뢰하였다. 토요일 오후 6시경 설치 기사가 집에 방문한다는 문자가 왔다. 난감했다. 이날 오전에 일 마치고 오후엔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가려고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약간 망설이다가 해당 설치기사에게 전화해 보았다. “저, 오전에 와 주실 수 없나요? 제가 오후엔 광화문에 가 봐야 해서요.” 순간 상대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씨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등을 둘러싼 권력형 비리 의혹 때문에 궁지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이 국면전환을 위해 느닷없이 내어놓은 ‘개헌’ 제안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대통령 때문에 “국민이 불행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남기 선생의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기록해서 공권력의 ‘부검시
“1947년에 전라남도 보성군 웅치면 부춘 마을에서 태어났다. 1968년에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지만 민주화운동을 했다가 박정희 정부 시기에 2회 제적을 당해 천주교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생활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때 복학해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아 1980년 5월 초까지 계속 민주화운동을 벌였지만 5.17쿠데타로 계엄군에 체포되었다. 중앙대학교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에 열린 2014년 도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나갈 때 우리 선수들은 대표팀 전원이 가슴에 노란 리본 하나씩을 달고 출국한 적이 있다. 탁구 명문이었던 안산 단원고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유가족과 아픔을 나눈다는 의미에서였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는 그런 풍경을 볼 수 없으니 2014년의 감회가 새롭다. 상위 1퍼센트만을 위한 공화국, 국민
인간은 누구나 평화로운 저녁으로 이어지는 평화로운 아침을 바란다. 그리고 이 평화를 위해 가톨릭교회는 매년 새해 첫날을 ‘세계평화의 날’로 기억하고, 교황은 간절한 호소로 인류에게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바라며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을 축복한다. 이참에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했던 비오 12세 교종이 “평화는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전쟁으로 모든 것
아직 이른 공부겠지만, 얼마 전에 후배가 찾아 와 분도출판사에서 갓 펴낸 책 한 권을 들이밀었는데, 제목이 "노년을 위한 마음공부"였다. 피델리스 루페르트라는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아빠스가 지은 책이다. 공연히 내 신앙의 안부를 묻는 구절이 있었다. 이 아빠스는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두라”는 베네딕토의 "수도규칙" 4장 47절을 소개하며, “수도자
“평화는 아무 것도 상실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쟁으로 모든 것이 상실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나치에 학살당한 유대인이 600만 명이고, 그중에서 200만 명이 어린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비오 12세 교종의 이 말이 이율배반적임을 단박에 깨닫는다. 비오 교종은 유대인 학살을 멈추기 위해 어떤 발언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
“어느 날 갑자기 조계사에 불덩어리가 떨어졌어요. 너무나 뜨거워 다루기 힘들었어요. 그 불덩어리는 안에 들어와 식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불을 불러왔어요.”조계종 화쟁위원회 도법스님이 조계사에 몸을 의탁했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두고 한 말이다. 경찰은 공권력을 투입하겠노라 조계사를 압박하고, 조계사와 조계종은 성소침탈에 반대하며, 한편으로는 한상균 위
어제 서울에는 첫눈이 내리고, 이제 겨울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소설가 서영은이 쓴 산문에 실린 눈에 관한 이야기도 따라와 앉는다. 묵은 선술집에서 사내 몇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자리가 파장이 날 무렵에 한 사내가 바깥으로 난 창을 내다보더니 이내 한 마디 한다. “야, 눈이 오네.” 일어서려던 엉덩이를 다시 붙이고 흰 눈빛에 젖어 다시 소주를
조수미가 리메이크해서 다시 한번 읊조리는 노래가 있다. ‘사랑, 그 쓸쓸함에 관하여’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로 시작하는 그 노래다.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야 탓할 수 없지만, 문제는 어긋난 사랑이다. 어긋난 사랑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여당은 국정화 반대자들을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다”라며 싸잡아 비난한다. 한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90퍼센트가 좌파”라고 비난했던 역사학자들과 많은 시민단체, 야당은 정부가 내놓은 국정교과서를 ‘친일 독재 교과서’가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공식 역사서술의 주도권을 정부와 시민사회가 서로 갖겠다고 윽박지르고 있
프란치스코 교종은 방미 중에 9월 24일 미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미 의회는 미국의 얼굴로서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국민을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종은 모세가 유대인을 자유의 땅으로 인도했듯이 “미 의회는 공정한 입법으로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언론들이 이날 “교종이 미국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고 보도할 만큼 교종은 의회 연설에
신도시 개발로 한국교회 지형이 약간 바뀌고 있다. 본래 한국교회는 부동의 대형교구 위치를 놓치지 않는 서울‘대’교구, 그리고 권역별로 나뉜 대구대교구와 광주대교구가 다음 순위이며, ‘그 밖의’ 교구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수도권의 도시 확장과 신도시 개발로 거대교구 자리를 넘보는 수원교구가 부상하고 있다. 혹자에 따르면 수원교구 신도시 지역의 모 성당
‘참회의 정신’을 가장 강조해 온 가톨릭교회에서 한국교회처럼 회개하지 않는 교회도 드물다. 나치에 대한 독일의 철저한 응징과 반성에 비추어 침략전쟁에 대한 일본의 후안무치를 비난하지만 한국만큼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나라도, 교회도 드물다. 2010년 8월 일본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이케나가 준 대주교는 ‘평화주간’ 담화문에서 한일합병 100년을 맞이해 일제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 16,18-19) 복음서에 쓰여진 이 놀라운 구절은 성 베드로 대성전의 천장에 라틴어로 새겨져 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에서는 베드로를 ‘초대 교황’이라 불렀다. 교황이란 ‘로마의 주교’를 지칭하는 말인데, 바오로와 다르게 베드로는 디아스포라 ‘
지금은 글을 쓸 때 언제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이라고 붙이고 있지만, 예전에는 ‘농부, 평신도신학자’ 이렇게 꼬리를 달았던 적이 있다. 언감생심, 입으로 노래하던 농사를 짓기 시작한 1999년부터다. 30대 후반의 아직 청년이 티가 무덕무덕 오르던 시절이었다.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뭘 모르고 붙인 ‘업’(業)이 농부였다. 농사는 관념이